임혜현 기자 기자 2016.11.27 14:48:07
[프라임경제] 전국 각지에 190만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이루고도 남을 시위 참여자 규모라는 점에서 외신들도 앞다퉈 상황을 송고했다. 평화로운 집회로 충돌과 연행 등 불상사를 막았다. 그러나 구심력을 발휘할 정치적 세력과 원로들이 없는 한국 사회는 유혈 사태 등 최악의 사정만 막았을 뿐, 아직 이 힘을 응집력으로 바꿔 국정 동력으로 삼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26일 밤, 박근혜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주최측 추산 서울 150만명 등 총 190만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로 눈이나 비가 오는 등 악천후였음에도 일군 사상 최대 규모의 탄핵 관련 촛불 집회다. 외신 표현에 따르면 1980년 이후 한국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시위다.
◆외신, 인파에 깜짝! 성숙한 문화에 감동 "시위 문화의 새 장 열어"
촛불의 힘 그리고 평화로운 시위를 가능케 한 성숙한 시민 의식에 높은 평가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7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비폭력 평화시위와 축제의 장에 전 세계의 경의와 존경이 쇄도하고 있다. 우리의 자랑이고, 국민의 위대함을 보여준 쾌거"라고 인사를 전했다.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다섯번째 시위에 정확히 몇 명이나 모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보수적인 전달을 하면서도 "주요 도로마다 인파로 넘쳐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이번 시위가 1980년 이후 한국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고 보도했고, 중국 신화통신도 이번 집회가 평화적이면서 축제분위기였다며 시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했다.
단순히 집회의 상황 전달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정국에 대한 전망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탄핵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국이 마비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스캔들로 한국 국정이 마비 상황이며, 이는 미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한 것도 이 보도와 맥을 같이 한다.
이미 촛불의 위력을 실감한 우리나라 정치권은 매주 집회 상황에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특히나 사상 최대 190만 인파의 힘을 목도한 뒤에는 특히 겸허한 목소리를 내놨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성원 대변인이 나서 구두 논평을 27일 내놨다. "전국 곳곳에서 타오른 촛불에 담긴 국민의 뜻을 잘 알고 있다"며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국회가 중심을 잡고, 질서있게 국정을 수습해서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탄핵 연대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르면 2일 늦어도 9일 발의될 예정인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해, 이번 190만의 촛불을 정치적 자산삼아 탄핵과 하야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민주당의 입장은 "야당과 새누리당 내 양심세력 모두 국민의 요구를 겸허히 받들어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는 전선에 결집할 것을 재차 촉구한다"는 것이다(기동민 원내대변인 27일 발언).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 또한 "국회는 국민의 엄중한 염원을 받들어 탄핵소추안 의결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당은 탄핵에 찬성하는 어떤 세력과도 연대하여 기필코 탄핵을 이루고야 말 것"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정치권, 촛불 분노 어디로 튈까 고민한다지만…
이런 상황은 그간 두 야당들 간에 여권 내부 양대 세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시각 차가 존재했지만, 이 간격을 좁히는 문제에 대한 고심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그간 상황을 보면, 민주당은 친박과 비박을 가리지 않고 탄핵안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는 입장이다. 한편 국민의당은 친박, 비박을 나눠 '연대'를 하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평이 우세하다.
민주당의 입장이 더 전향적인 것 같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새누리당을 적으로 규정하고 내부자들과의 연대에는 오히려 인색하다는 평도 나온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새누리당 정치인 전체를 부역자로 보면서 백안시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한편 국민의당 같은 경우 비박은 같이 갈 수 있는 상대, 말이 통하는 일시적 휴전 협상 대상자로 보며 이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지금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고, 또 이것이 여야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당리당략을 내세우면 광장의 횃불은 국회를 덮칠 것(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이라는 고심이 거국적인 구상과 실질적인 정치력 발휘로 이어져야 할 필요가 높다는 주문이 나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야권의 희미한 위상 문제가 오히려 새누리당 일부의 새로운 정치 실험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탄핵을 위해 다른 세력과 연대할 뜻을 공표한 바 있다. 또 27일에는 이미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탄핵에 찬성하는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정당성을 잃은 새누리당을 탈당할 것을 요구했다.
남 지사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 중 탄핵에 찬성하는 분이 40명 정도라고 한다"면서 "탄핵에 (대한) 찬성을 국민 앞에 명백히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은 탈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은 기본적으로 구성원간 지향과 철학 목표에 동질성을 유지하는데 지금 흔히 얘기하는 '친박-비박' 간 거리를 보면 이 두 세력이 굳이 같은 정당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뭔가"라고 비판했다.
친박과 거리를 두고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 새 정치세력이 모일 수 있다면, 이 세력과 연대하는 일부 야당의 움직임에 한층 더 힘이 실리게 된다. 야권 내부 역학 구도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촛불의 힘을 확인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국민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응답 대신 정치공학만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지 우려가 제기된다. 구심력이 없는 한국 사회가 촛불의 힘을 살리지 못하면, 나라가 연말연시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고민도 다양하게 시작돼야 할 필요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