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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24] 이토록 화려한 일상을

이은대 작가 기자  2016.11.24 1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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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감자와 삶을 계란을 으깨어 양배추와 함께 속을 만든 샌드위치. 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고 우유와 함께 입 안에서 어우러지는 맛을 아주 좋아한다.

한겨울, 오후 5시쯤 어스름이 되면 공기 중에 특유의 냄새가 난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시간, 마음은 차분해지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특유의 시간의 향기가 온 몸을 감쌀 때가 있다.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지면, 대지의 표면에 잔뜩 쌓였던 먼지가 물에 씻기면서 흙냄새가 올라온다. 일부러 그 냄새를 맡기 위해 소나기를 맞으러 나갈 때도 많았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마치 극장에서 영화가 막 시작되기 직전과 같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해진다. 그 짧은 시간의 두근거림이 기다려진다.

중국집 뒷골목을 지나칠 때면, 환풍기를 통해 골목 가득 쏟아지는 특유의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허기가 몰려오긴 하지만, 언제 맡아도 코를 벌렁거리게 되는 기분 좋은 냄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시작하면, 온 몸을 적시는 물줄기에 저절로 피곤이 풀린다.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 보름달을 감옥에서 본 적이 있다. 창살 넘어 둥근 달을 마주했을 때, 나는 소원을 빌었다. 너무나 간절했기에 눈물을 닦아가며 하염없이 가슴을 쥐어뜯곤 했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달을 보며 소원을 빈 적은 이전에도 많았다. 내 삶에는 늘 목표가 있었고, 도전하는 중이었으며, 반드시 성취하고자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살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를,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기를, 더 큰 집과 자동차를 살 수 있기를, 더 근사하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내가 잃은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랄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원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던 나의 삶은 이제 평범한 일상을 찾고 있었다.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르겠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것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것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바라게 되는 소망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아갈 때에는 이 모든 바람들이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는 말은 상당히 위험한 말이다. 삶이 극도의 위기와 혼란에 처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진다.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유와 함께 샌드위치를 베어물 수 있는 순간, 어스름의 시간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비오는 날의 흙냄새, 매주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중국집 뒷골목의 진한 음식냄새, 온 몸이 젖도록 땀을 흘릴 수 있다는 현실.

이 모든 일상들이 얼마나 화려한 행복인지, 나처럼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물이 나도록 행복한 오늘에 감사한다.

이은대 작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최고다 내 인생>,<아픔공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