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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브랜드 죽이는 오너들의 경솔한 입놀림

백유진 기자 기자  2016.11.24 11: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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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여러분이 시위에 나가 있을 때 참여 안 한 4900만명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한다…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정치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여러분은 하던 공부만 하면 된다."

이봉진 자라(ZARA) 코리아 사장이 지난 22일 대학교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한 강연 참석자가 트위터를 통해 해당 내용을 밝힌 것이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촛불시위를 비난하는 듯한 논조의 이 발언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돼 누리꾼들의 울분을 샀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까지 나오자 이 사장은 글을 처음으로 올렸던 강연 참가자에게 "집회 참여하는 것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해명의 메시지를 보냈다.

해명글에서 이 사장은 "저 역시 지금의 정치 상황이 매우 부당하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져야 하며 이를 위한 집회나 국민운동은 정당하다고 믿는다"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 자기가 맡은 본업을 잘 유지해야만 자신의 미래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장을 향한 공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찬 바닥에 앉아 촛불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왜 사서 고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셨으면 한다"고 자라 불매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일부 누리꾼들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꼽히는 친일파 이완용과 이 사장의 발언이 유사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시기 "시위는 힘이 없는 자들이 하는 것"이라며 "이럴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해서 힘을 키워라"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사장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영식 천호식품 대표도 앞서 인터넷 카페에 "뉴스가 보기 싫어졌다. 촛불시위, 데모, 옛날이야기를 파헤치는 언론 등 왜 이런지 모르겠다. 국정이 흔들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며 촛불 집회를 비난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려 불매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등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합법적인 집회·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의사를 정부에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우리나라도 헌법 21조서 국민의 집회·시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는 최근 드러나고 있는 여러 사건으로 자괴감, 회의감을 느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난, 역사에 길이 남을 이례적인 평화시위다. 특히 취업난 등으로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별 다른 노력 없이 돈과 권력으로 성과를 이룬 이들을 보며 분노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신분사회에서 촛불을 들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있는 자들만 편한 세상'임이 공공연하게 밝혀지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은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망언'을 내뱉는 이들은 기업을 이끌 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이 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