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중국인들이 '상신(商神)'으로 추앙하는 이가 있다. 바로 '도주공'이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지략가로 치열한 중원 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주군을 도와 전쟁 승리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라는 점을 함께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와신상담' 고사에 배경인물로 함께 등장하는 범려가 바로 도주공이다. 즉 범려는 정치와 군사 전문가에서 다시 상인(기업인)으로 변신, 성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범려는 원래 월나라의 대부로 있으면서 와신상담의 주인공 월왕 구천을 보좌하면서 오나라에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보좌했다. 지금 흔히 정치권에서 쓰는 말로 하자면 가신(家臣)이다. 하지만 '가신 중의 가신'인 그는 구천이 어려움을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인물이라 판단되자, 과감히 월나라를 떠난다.
가벼운 귀중품만 챙겨 가족과 항해에 나서 제나라에 도착하자 '치이자피'라는 이름을 썼다. 부자가 됐지만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는, 다시 교역의 중심지인 도 지방으로 가서 이름을 '주공'으로 바꿨다. 그래서 도주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인데, 주공으로 살면서도 큰 부를 일궜다.
마치 전설이나 신화 속의 인물처럼 나라를 움직일 정도의 돈을 벌었다 다시 이를 사회에 환원하고, 또 그만큼 벌고 나누기를 반복하며 이 세상을 살다 갔기에 범려라는 이름 대신 후대에 도주공으로 더 조명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범려(도주공)의 이런 행보는 일찍이 또 다른 지략가인 계연이 월왕 구천에게 제시한 일곱 계책 중 하나인 '때와 쓰임을 알면 그때 필요한 물건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도주공이라 해서 그 행보가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아들이 타국에서 살인 사건을 일으켜 사형수 신분이 돼 갇히자 거액의 돈을 보내 구명 운동을 한 것이 그것이다. 다만 이는 당시 중국의 제도가 널리 속죄금 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현대적 잣대를 그대로 가져다 재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아울러 애초 정치를 접고 상인으로서의 새 길에 나선 것도 주군의 그릇이 작았다는 점 때문이라는 불가피한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인간적으로는 불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도주공의 행보는 오히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교훈을 주는 바가 적지 않다. 정권 비선 논란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검찰 청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들어서게 됐다.
정권을 창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수장이 된 이의 입장에서도 공로를 가늠해 논공행상을 해 나눠주는 게 쉽지도 않지만, 주변에서 고생한 이들로서도 자기 깜냥을 넘어서는 방식과 내용의 보답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기가 쉽지 않다는 풀이가 많다.
그렇지만 최씨의 질주는 어느 모로 보나 지나쳤다. 이런 때일수록 홀연히 떠나 새 길을 찾은 도주공의 인생2막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최씨가 스스로 인생2막을 선택해 야인으로 살았다면,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도주공 못지 않게 높이 평가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박근혜 대통령 일가도 못 가진 영예까지 갖고 있는데 말이다. 제때 브레이크를 거는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