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 들어 내내 노사 갈등에 시달리는 조선업계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부터 노사 간 임단협 협상팀을 꾸렸으나, 다섯 달간 약 48차례에 걸친 협상에도 유의미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나마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만 2년 연속 기본급 동결 등 노조가 한 발짝 물러나는 태도로 임단협을 마무리했을 뿐이다.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으로 대표되는 조선업계 노조는 사측의 무리한 구조조정, 특히 인력감축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올 상반기 조선 빅3에서만 최소 30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희망퇴직을 고려하면 그 숫자는 50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이런 노조의 불만에 사측은 기업 정상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수순이며 오히려 앞으로도 인력감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가 인지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다.
사측은 노조가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무시한 채 노조의 이득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한다. 유례없는 불황을 겪는 지금 상황에서 노조가 주장하는 기본급 인상이나 경영권 참여 등 조건들이 지나치게 터무니없어 도저히 합의를 낼 수가 없다는 것.
아울러 각 기업들은 오는 31일 정부에서 조선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는 것에 맞춰 더욱 구조조정에 고삐를 죄고 있다. 다른 기업들보다 다소 소극적이었던 대우조선까지 분사와 희망퇴직 등 연내 3000여명 규모의 추가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조선노연도 강경대응에 나섰다. 조선노연과 금속노조의 3개 하청노동자지회가 참여한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저지 대책회의'는 지난 25일 '조선산업 구조조정 저지와 하청노동자 고용보장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 "조선산업 구조조정 저지와 하청노동자 고용보장을 위해 원·하청 노동자가 공동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노연은 기자회견에서 "지금 조선산업 구조조정의 태풍은 노동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다"며 "희망퇴직을 가장한 정리해고와 강제 전출, 분사, 정년퇴직으로 일방적인 부실 떠넘기기와 기획폐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대주주의 관리감독 부실, 책임 방기, 경영진의 실적 부풀리기, 분식회계, 부실자회사 인수, 방만한 경영으로 6만명이 일터에서 쫒겨 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량 인적 구조조정으로 본인들이 져야 할 책임을 노동자에게 덮어씌우고 있다는 첨언도 있었다.
그동안 조선업계 노조는 강성으로 유명했지만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는 배제한 체 노조 이익만 챙기는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하청과 연대를 통해 사측을 압박할 거라는 전망이 나돈다.
사측과 노조가 모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경영진의 과오는 덮은 채 인력 감축만으로 개혁이 될 것이라 여기는 사측을 보는 노조의 입장도, 한시가 급한 이때에 잘못이 회사에만 있다며 책임질 수 없다고 버티는 노조를 보는 사측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노사 양측 모두가 지금의 상황을 풀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측이 입장을 한 치도 굽히지 않은 채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부디 노사가 서로의 시비를 가리고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소통을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