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인 기자 기자 2016.10.24 10:14:02
[프라임경제] "마리몬드를 구입하면 '명품'을 구입하는 것과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무작정 '좋은 일을 하니 도와주세요'하는 것이 아닌,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호소하는 게 오히려 동반자들의 존엄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별 의미 없이 시작한 일이 한 사람 인생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경우도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소셜벤처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최근 20~30대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회에서 소외받는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배우 박보검과 가수 수지 등을 비롯한 여러 스타들이 휴대폰 케이스 등 마리몬드 제품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착한 소비'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작,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아주 소소했다는 게 윤 대표 설명이다.
대학 시절 여러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결하는 연합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윤 대표는 활동의 연장선에서 어느 NGO단체를 만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접하고, 이를 응용해 패션 제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물론 갓 대학을 졸업했을 뿐 사회경험이 전무했던 그가 무작정 창업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걱정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우려를 딛고 그의 아이디어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소셜벤처 육성사업에 선정됐으며, 현대차 창업지원사업 'H-온드림(2013년)'의 자금과 사업 노하우 등을 전수받는 등 성과를 얻기도 했다.
올해로 창업 4년차를 맞은 마리몬드는 '소셜벤처'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으나, 정작 사회적기업 인증은 받지 않았다. 인증을 받으면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자생이 불가능한 구조에 만족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윤 대표는 "지원을 받으면 서류작업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및 인건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사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오히려 가장 중요한 '제품 퀄리티'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고민도 컸다.
◆성공에 성공 거듭…올 매출 30억 예상
지난 2013년 창업 이후 마리몬드는 사업 의미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호응하면서 매출이 매년 두 배로 크게 뛰는 등 거듭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지난해 16억원을 기록한 매출은 올해 두 배 수준인 3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50%를 기부하고 있는 영업이익도 크게 뛸 전망이다.
마리몬드 구성원은 모두 31명. 여타 패션회사와 같이 경영지원실·브랜드전략실 등으로 구성됐으나, 사내 조직 중 브랜드 스토리실이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해당 부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스토리를 발굴해 시즌(SS·FW)마다 할머니 한 분을 선정해 소개를 하고 있다.
최근 마리몬드가 역점을 두고 있는 신사업 분야는 역직구 시장이다.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중국·대만 등 해외에서 구매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윤 대표는 "구매자에게 직접 연락해 물어봤더니 '한류스타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가졌고, 브랜드에 담긴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공감해 지인들에게도 소개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우리나라와 똑같은 논리가 통한다면 아예 전담 팀을 꾸려 제대로 진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중국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난징에서 사회적기업 '트리플래닛'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숲을 조성하고 있으며, 내년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회적기업과의 업무 협업도 추진한다. H-온드림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기업이 많다. 마리몬드와 비슷한 시기에 창업된 '두손컴퍼니'는 홈리스 일자리를 제공하는 물류대행 소셜벤처로, 마리몬드 온라인 판매 물류를 담당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윤 대표는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신 것처럼 우리 비즈니스로 더 많은 '동반자'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중기적으로는 향후 더 많은 동반자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들 스토리에 맞는 많은 패턴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의류 브랜드 또는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거쳐 제작되는 외투 안감에 마리몬드 패턴이 사용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이 같은 제품들이 마리몬드 온라인 플랫폼에서 직접 판매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기 과제 중 하나다.
그는 이어 "장기적으로는 10년 뒤,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사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회복될 수 있는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멀티브랜드 그룹이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전했다.
◆"힘들지만, 힘들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다음은 윤홍조 대표와의 일문일답.
▲처음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거의 다수 사업자가 그렇듯이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뛰어든 것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어떤 부분만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되면 좋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했다. 단순히 만났던 할머니들께 도움이 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정작 시작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고 많이 배웠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사업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고민해 보니 결국 그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진 존재 자체 소중함과 존귀함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이셔서 눈과 귀가 많이 어두우시다. 많은 사회적기업이나 NGO단체들이 방문하면 아마 누가 누군지 구분하시기 어려우실 거다. 그럼에도 나중에 가족 분들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하는 이 사업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면서 뿌듯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 신생기업으로 달려든 일이라, 기존 NGO 선배들이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믿음직스런 단체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아 지금까지 잘해왔다는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꽃 중심 패턴'이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익숙한 것 같은데.
-현재 어필하고 있는 고객층을 '소외계층 혹은 사회 등의 문제에 공감하지만, 수단을 찾지 못한 사람들'로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보니 여성에게 중점이 맞춰지고, 남성이 뒤로 밀리는 건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얼마 전 SK와이번스(프로야구팀)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배우 박보검씨가 착용하면서 남성들에게도 인지도가 조금은 높아진 것 같다.
▲마리몬드를 모르는 미래 '동반자'들에게 한마디.
-요즘 어머니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하는 일만으로 치면 너무 고된 노동을 견디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동이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어머닌들도 개인의 소중함을, 존엄한 인간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 최근 신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12월에 게스트하우스를 론칭할 계획인데, '엄마'들만 쉴 수 있고 엄마들이 직접 운영하는 그런 콘셉트로 진행하고 있다.
▲연예인들을 통한 홍보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는데 향후 계획은.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본인 의지로 우리 제품을 착용하고 사용한다는 순수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용하는 연예인과 제품을 구매하고 선물하는 팬분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마리몬드란 어떤 의미인가.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 것이다. 물론 회사원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나는 아마 후회하는 삶을 사는 회사원이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 줬고, 또 남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사회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만들어준 소중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물론 힘들지만, 이렇게 힘들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더 발전하도록 온 힘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