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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인의 이런 마니아] ‘앤틱소품’ 시공간 뛰어넘는 따뜻한 추억

전혜인 기자 기자  2016.10.21 1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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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누구나 취미생활 하나쯤은 있겠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해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 등을 보며 머리를 바쁘게 쓰기도 합니다. 그런 대신 지갑을 분주하게 여닫는 이도 있겠죠. '이런 마니아'에서는 현대인들의 여러 수집 취미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소개합니다.

필자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취향은 그야말로 '심플 이즈 베스트'인데요, 뭐든 갖고 싶어하는 필자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올 때마다 등짝을 맞고 집안 어지럽히지 말라고 잔소리를 듣는 일이 어언 20년째인데요.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 낡은 그릇을 싸들고 오기 시작하다 못해 옛날 가구를 집에 들여놓는 일이 생겼어요. 식견이 없던 필자는 어디서 저런 중고를 사오셨냐며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그 그릇과 가구의 가격을 알게 되면서 진심으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처음엔 앤틱 가구나 홍차 잔, 도기 그릇이 너무 예쁘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테이블웨어는 너무 빈약하고 조잡스럽게 보였을 뿐더러 다른 사람이 쓰던, 사람보다도 나이가 많은 가구라니 어쩐지 으스스하다는 느낌도 있었죠.

그러던 것도 잠시,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의리로 쇼핑에 동참했지만 지금은 필자가 어머니보다도 더한 앤틱 '덕후'가 돼 또다시 등짝을 맞아가며 소품을 사 모으고 있죠.

그렇다면 대체 '앤틱'이란 무엇일까요? 지난 2005년 출간된 '앤틱 가구 이야기'라는 책에는 앤틱의 정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앤틱이란 일반적으로 100년 이상 된 물건을 의미하는데 최근 들어 100년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물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임새가 넓어졌다고 해요.

즉 우리가 종종 백화점에서 보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새 가구들을 앤틱가구라고 칭하거나, 또는 만든지 40~50년 된 중고 가구를 앤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거죠. 또 과거의 저처럼 앤틱가구를 모두 중고품이라 여기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인식이라고 합니다.

앤틱 제품들은 실제 사용하기도 하지만 투자용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이런 경우에는 고를 때에도 심혈을 기울이겠죠.

원목의 종류, 만들어진 시기, 서랍 손잡이 등 부속품의 상태나 완제품 생산 이후 얼마나 수리됐는지까지 꼼꼼하게 따져서 구입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앤틱 감정 전문가도 있어요. 심지어 아주 고가의 앤틱 제품을 위한 보험도 따로 존재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비싼' 취미로 알려졌지만, 해외에서 앤틱은 매우 일상적인 문화입니다. 어느 집이나 19세기 물건 한두 가지는 있고, 그런 도자기 그릇을 만들어온 장인들이 세운 브랜드들이 요즘은 명품 테이블웨어가 돼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중이죠.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집을 뒤져봐도 오래된 그릇 하나 나오기 힘들까요. 그것도 유럽 여타 국가보다 훨씬 도자기를 많이 만들어왔고 익숙했는데 말이죠. 당연하지만 역사와 문화의 차이입니다.

전쟁과 급격한 산업변화로 달려가기에만 바빴던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오래된 것을 물려주는 것보다 새로운 걸 차려주는 것이 더 미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어머니에게 왜 앤틱에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물어보니 "나중에 너도 쓸 수 있을 테니까"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거나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앤틱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실생활에서 앤틱은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추억을 선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도기 재떨이를 담배를 끊으신 아버지가 계속 갖고 계신 것처럼 말이죠. 어머니가 사용하던 그릇을 내가, 그리고 내가 물려주게 될 사람이…. 그것을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경제성을 뛰어넘는 따뜻한 추억을 물려받고, 또 후대로 그 기억과 추억이 연결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