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아주 가끔, 막노동 현장에서는 신나게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대다수 일꾼들은 피곤에 절어 인상을 쓰고 있거나, 입에 욕을 달고 일하기 일쑤인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종일관 환한 표정으로 땀을 흘리는 사람을 간혹 만난다.
최근에는 함석지붕을 이는 작업장에서 만난 S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격이겠거니 생각하다가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곁에 다가가 물어봤다. 여느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S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작업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직접 주문을 받고 현장을 지휘하는 자신만의 사업을 가지겠다는 꿈이다.
그러니까 일당을 받고 억지로 하루를 때우는 막노동꾼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향해 소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 당연히 얼굴 표정에 그 환희와 설렘이 드러날 수밖에.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쓰는 글을 읽는 누군가가 힘과 용기를 얻고, 그로 인해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것이 나의 소명이자 삶의 이유다.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가졌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뭔가 특별한 비법이나 요령이 있지 않을까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수업에 참석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에게 글쓰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없고,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실하게 쓰기만 한다면, 그리고 매일 쓰기만 한다면 반드시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소리 높여 강조한다.
함석지붕을 이는 작업은 매우 위험하고 힘들다. 거친 작업환경 속에서 한 시간만 일을 해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저절로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는 파티장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한 노동이 될 지도 모른다. 글쓰기에도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 고통스럽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함석지붕을 이는 S와 글을 쓰는 나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목표가 분명하다는 사실.
이것 하나로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가 달라졌다.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등의 허황된 목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분명하게 그려놓고 있다.
오늘 당장은 함석지붕 한 장을 이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몇 줄의 글을 쓰는 것이 하찮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삶의 이유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찾는다.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뼛속 깊이 느끼며 살아간다. 이것이 진짜 행복이다.
잔뜩 땀을 흘린 뒤 시원한 생수를 병째 들고 들이키는 S를 본다. 햇볕에 그을린 시커먼 그의 얼굴이 보석처럼 빛난다. 백만불짜리 표정이었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최고다 내 인생> 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