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M(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함축'입니다. 함축된 언어는 다양한 정서적 암시는 물론 말하는 이의 성격, 분위기, 심리상태 등을 연상하게끔 만들기 때문이죠.
네 번째 「M&M」은 영국 그라인드 코어 록 밴드 네이팜 데스(Napalm Death)가 1987년 공개해 지금까지 가장 강렬한 노래로 평가받는 '유 서퍼(You Suffer)'입니다.
'록 밴드 노랜데 강렬함은 당연한 것 아니야?'라는 반응이 많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이미지를 대변하죠. 헤비메탈, 하드록, 메탈코어 등 서른 가지가 넘는 록 음악 하위 장르를 아우르는 수천, 수만 개의 음악들은 서로의 힘을 뽐내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록 음악도 이만큼 강렬하진 못할 겁니다. 이 곡의 장르는 네이팜 데스가 탄생시킨 극강의 강렬함이라고 평가되는 '그라인드 코어'인데요.
그라인드 코어는 스래시 메탈과 하드코어 펑크를 접목한 낮고 쉰 소리로 내지르는 보컬, 강하게 뒤틀린 기타 사운드(슬래쉬 메탈)에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연주(하드코어 펑크)가 결합된 가장 파괴적 형태의 록 장르입니다.
이 장르는 빠른 연주가 특징으로, 1분 내외에서 짧게 끝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 곡은 이러한 통념마저 박살내버립니다. 유 서퍼의 플레잉 타임은 단 1.316초, 아주 강렬하면서도 코믹하죠. 황당하다고 표현해야 맞겠네요.
가사랄 것도 없이 노래를 들리는 대로만 적어본다면 '유우우우왁~'인데요. 아마도 네 명의 멤버가 각자 한 단어씩 내지른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래를 만들라고 했더니 이구동성 퀴즈를 낸 격이랄까 노래를 만든 당사자들도 '유 서퍼는 그라인드 코어이면서 코미디록' 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가사는 그렇게 코믹하지 만은 않습니다. 'You suffer, But why(넌 고통받지, 하지만 왜)'가 이 곡의 전체 가사죠. 이 심오한 가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데요. 바로 이 곡이 실린 네이팜 데스 첫 번째 앨범 'Scum(1987년)' 표지입니다.
앨범 커버에는 △네슬레 △코카콜라 △맥도날드 △브리티시 석유회사 등 다국적 기업 로고가 섞인 해골 더미 위에 남루한 흑인 가족이 서있고, 그 주위에는 넥타이를 맨 남자들이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넥타이(자본주의), 가난(노동), 해골(착취의 결과물) 등이 암울한 잿빛으로 인쇄됐죠.
앨범 표지를 미뤄볼 때 이 곡은 '다국적 기업들의 '약탈적 자본주의'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단말마적 비명(유우우우왁)에 실은 노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네이팜 데스는 이처럼 심오하면서도 비판적인 의미를 지닌 노래를 '코미디'라고 소개하며 다국적 기업의 비인간적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도 서슴지 않는 극한의 샤우팅을 들려줍니다.
이들이 비판한 다국적 기업의 노동 착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요. 현재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생산비 절감, 원료 확보, 현지시장 확보 등을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노동자 문제는 화려한 상품 속에 가려져있죠.
단적인 예로 세계 카카오의 35%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에는 세계적인 식품기업 네슬레,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카길 등이 운영하는 농장이 있는데요. 이곳에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근 빈국, 부르키나파소의 청년들이 매년 몰리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그라인드 코어보다 극악한 노동현실에 무너지고 맙니다. 농장 곳곳엔 독사가 득실거리고, 숨을 턱 끝까지 틀어막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제대로 쉴 곳조차 없지만 일당은 계약기간이 만료돼야 받을 수 있어 함부로 일터를 떠나지도 못합니다.
목숨을 담보로 일해도 그들의 처우는 개차반 수준인데요. 코트디부아르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가는 카카오 소매가격의 2.5%에 불과합니다. 이를 연봉으로 따지자면 약 300달러(33만8400원) 수준이죠.
이런 노동자들은 △전자 △식품 △의류 등 수많은 업권에 분포돼 있습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전 세계에 2000만명이 넘는 노예가 존재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노동자 착취 문제가 서서히 해결 국면을 맞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네슬레는 아프리카 코코아농장에서 벌어진 어린이 노예와 인권 침해 문제로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미국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해외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기각되도록 한 '2013년 대법원 판결'과 차이가 있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현재까지 다국적 기업들은 이 판결을 근거 삼아 유사한 사례와 관련된 소송을 막아왔으나,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이 같은 추세가 바뀔지도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