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손 안 대고 코 풀기' 쉬운 세상이다. 타인의 창작물 일부를 몰래 사용하는 행위, 일명 '표절'은 너 나 할 것 없이 전 업계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암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이랜드그룹의 SPA 브랜드 스파오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아 선보인 의류 디자인이 문제였다.
가수 엑소 멤버 이름을 한글 자음과 모음, 알파벳의 조합으로 표현해 프린팅한 '엑소 한글 맨투맨 셔츠'가 2년 전 배우 유아인과 패션 브랜드 노앙(NOHANT)이 협업해 만든 '러브시티' 디자인과 흡사하다는 의혹이 일었다.
'XIUㅁIN, CHㅔN, CHㅏNYEO…' 발음표기대로 한글과 알파벳을 섞어 차례차례 엑소 멤버 시우민, 첸, 찬열의 이름을 표기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앞서 출시된 러브시티의 'ㅅEOUL, ㄹONDON, NEㅠYORK…' 서울, 런던, 뉴욕을 표현한 디자인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당시 유아인은 노앙의 디자이너 남노아와 기부를 목적으로 이 디자인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러브시티의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됐다.
스파오도 '유니세프 착한나눔' 일환으로 티셔츠 1장당 1000원씩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 외에도 '기부'라는 키워드가 겹친 셈이다.
이에 스파오 측은 '러브시티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를 베끼거나 참고한 것이 아니며, 한글과 영어를 결합한 디자인은 흔한 디자인이기에 사용했을 뿐 문제 될 소지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견 당당해 보이는 태도와는 달리 표절 논란에 휩싸이자 홈페이지에서는 이미 해당 맨투맨 셔츠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이를 두고 유아인 측은 "디자인의 창조적 가치는 보호받기 쉽지 않다"며 "동종 브랜드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나 디자인 관련 표절은 법률상으로 딱 떨어지는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창작물은 표절 여부를 가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뒷받침돼야 하는 친고죄에 속하니 유야무야 넘어가기 부지기수다.
유아인과 노앙 측이 피해자라고 나서는 등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앞서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 그저 이대로 의혹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높다. 표절 시비는 패션디자인 업계에 만연하다. 지난해 배우 윤은혜도 중국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한국 디자이너 윤춘호의 옷을 베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디자인 보호법은 징역 7년 또는 벌금 1억원 이하의 처벌 규정이 적용되지만, 사실상 특허권에 발목이 잡혔다. 특허권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통상 1년이 소요되는데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하기 어려워 서로 디자인을 베끼는 상황이 돼버린 것.
이러한 허점을 악용해 누군가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창작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한순간에 도용할 수 있다. 디자인 보호가 법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표절이 아님에도 표절 시비를 걸거나 표절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박박 우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실 '창조는 모방의 끝에서 시작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완전한 창조는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이나 더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공멸하는 길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개성을 살린 창작물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법 개선도 중요하거니와 이에 앞서 개인의, 기업의 양심에 달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