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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 새로 들어온 경비 아저씨는 노(勞)파라치

처음부터 '잘리려고' 마음 먹고 들어와 분탕…근로계약 자체 부정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9.13 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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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사람은 모이면 언제고 헤어지게 마련(會者定離)이고, 헤어진 사람은 또다시 만나게 마련(去者必反)입니다. 하지만 반갑게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바로 근로고용관계인데요. 회사가 정리(會社整理)해고를 잘못한 경우 노동자가 꿋꿋하게 돌아온 거자필반 사례를 모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극복한 사례도 함께 다룹니다. 관련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근로자 주장: 안녕하세요? 빌딩 경비로 일하다 억울하게 해고당한 A라고 합니다.

전 **빌딩에 경비원으로 들어갔는데요. 사람이 다쳐서 급하게 자리가 비다 보니, 경황 없이 사람을 뽑는 눈치더라구요. 제가 면접을 본 날도 사실 대충 일처리를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낮 근무, 급여는140만원 대신 점심 식대는 별도로 없음, 뭐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조건만 쭉 불러주고는 일을 할지 말지 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근로 계약서요? 아, 저렇게 불러주는 정도니까 당연히 작성을 안 했죠. 심지어 일하는 시간은 알려주면서 어느 요일에 쉬는지도 별 소리가 없었다니까요.

그나마 제가 사무실 칠판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에 근무 상황판을 보고 전임자가 월요일에 쉬었으니 나도 월요일에 쉬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첫 출근은 그래서 당장 일요일부터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름을 타서 그런지 유독 그날따라 상태가 안 좋더라고요. 점심을 대강 먹은 후로는 더 안 좋은 것 같았습니다. 부득이 한 바퀴 건물을 돌고 경비실에 앉았지만, 영 안 좋아서 로비 경비실 앞 복도 의자에 앉았다 누웠다 했죠. 마침 업무를 총괄하는 경비반장이 우리 건물에 들렀다 그걸 보고는 경비실 안에 쉴 공간도 있으니 들어가서 쉬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니 고맙긴 했지만, 막상 그날 6시쯤에는 들러서 "아니, 아직 본격적으로 안 더워졌는데 벌써 이렇게 퍼지면 어떻게 근무를 하려고 하느냐?"고 추궁하듯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아까 그 들어가서 쉬라는 소리도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데 보기 안 좋아서 그런 것처럼 생각되고 대단히 서운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쟁을 좀 하다가("퇴근시간이 되었으니 그만하자, 별 일 아닌 것으로 왜 그러시느냐? 정 하실 말씀 있으면 내일 휴일이니 모레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니, "왜 멋대로 내일이 휴일이냐? 그러려면 모레도 쉬고 글피도 쉬고 아예 푹 쉬라"고 하더군요) 귀가해 버렸지요.

그러고는 휴일이니 하루 쉬고, 화요일에 갔더니 제 경비복이 없는 겁니다. ' 잘린 건가?' 낙심해서 잠시 의자에 누워 있으니 이번에도 또 뭐라고 나무라는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화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들러 처음 면접을 본 관리자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봤지만, 경비반장과 일을 해야 하니 서로 잘 이야기해 보라고만 하고, 경비반장은 자꾸 그런 식으로 해서 일 할 수 있겠느냐 닦달만 하고 노동부에 가든 뭐 하든 알아서 하라고까지 하니 저 정말 억울하게 '잘린' 것 맞지요?   

사용자 주장: 안녕하세요? OO종합관리입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 빌딩 안전관리, 그러니까 경비업을 위탁받아서 해 주는 조그만 회사입니다. **빌딩 등 바로 요 근방에 모여있는 상업용 빌딩 몇 곳을 관리하고 있지요.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 주먹구구로 운영하는 면이 없진 않지만, 시쳇말로 '가족같은 분위기'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두 자릿수 인력이 일하다 보니 건물 특성에 따라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쉴 수 있게 배려해주기도 하고, 적절히 경비반장을 통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근근이 꾸려나가는 수준이지만, 일을 맡긴 건물 측이나 근무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나쁜 반응 없다는 게 나름 자부심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A씨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저희가 주먹구구로 운영해온 게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비 형광등을 갈겠다고 사다리에 올랐다 떨어져 고관절을 다친 B씨를 대신해 그 사람을 급하게 채용했습니다.

이력서에는 몇 군데서 경비일을 해봤다고 해 기본 요령도 있을 것 같고, 나름대로 눈치도 빠를 것 같았는데 영 아니더라 이 말입니다. 급하게 채용하다 보니 월급 등 중요한 조건만 우선 이야기를 했습니다. 급여가 좀 작은 편이고 점심 식대는 따로 없다는 조건을 설명해도 군말 없이 끄덕이길래 수긍하나 보다 했지요.

사실 이렇게 처리하면 뭔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사실 저희로도 켕기는 구석도 없지 않지만, 경비일이라는 게 원래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뜨내기처럼 금방 그만 두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업계에서는 한 사나흘 일을 시키고 근로계약서를 쓰고요.

예전엔 갑자기 그만두거나 하지 못하게 첫 월급에서 한 보름치 정도를 떼어서 나중에 준다고 하기도 했답니다. 이걸 '깔아놓는다'고 했는데, 워낙 심하다고 말이 많아서 요샌 그렇게는 안 하고요, 대신 처음에 변심할 가능성 때문에 사흘 정도만 계약서 쓰는 걸 미뤄두는 겁니다.

휴일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월요일에 전임자가 쉰 건 사실이지만, 전부 다 같은 날 쉴 수 없기 때문에 번갈아 원래 맡은 곳 아닌 다른 빌딩에 가서 잠깐 있어야 하기도 하고 해서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은 조율해서 잡거든요. A씨는 경비반장과 시비가 붙으니 다짜고짜 나 내일 안 온다 고집을 피운 거나 다름없습니다.

막상 화요일에 와서 경비복이 없어져서 낙심했다 어떻다 하지만 사실 그게 말이 안 되는 게 옷을 달라고 항의를 하거나 한 것도 아니구요. 사무실에 들러선 다시 일 잘 할 것처럼 그러더니 경비반장하고는 또 으르렁거리고, 한 며칠 일 하는 둥 마는 둥 출근만 했다 어영부영 들어가더니 해고당했다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 중앙2015부해1116 사례를 참조해 변형·재구성한 사례

이 사안은 '근로기준법'의 수습기간 규정(제9조), 해고(제80조)와 징계 종류(제89조), 징계 사유(제90조) 등을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복잡한 사안입니다. 징계 사유를 보면 직무에 방해가 되거나 업무상 의무에 위배되는 행동들을 개략적으로 거론했고, 징계 종류에도 무턱대로 사람을 내보내는 대신 경고나 견책처럼 말로 타이르는 선에 그치거나 감봉 등까지 다양한 수단을 마련했죠.

해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품행 또는 행위로 보아 더 이상 근로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 해고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전에 왜 그런 문제가 생긴 건지 소명의 기회를 꼭 줘야 한다고 반대조건을 걸었죠.

이런 점들을 살피면, 이 사안에서 A씨의 해고 문제는 억울한 해고까지는 아니어도 절차상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위 이야기의 모델이 된 실제 사례에서도 지방노동위원회는 구제 판정을 내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막상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는데요.

우선 좀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A씨의 전력이 문제가 됐습니다. 파파라치라고 흔히 부르죠.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처럼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아낸 다음 그걸 빌미 삼아 신고 포상금을 타는 걸 일삼는 경우인데요. A씨의 경우도 5년간 12번이나 부당해고로 문제를 제기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다분히 고의로 부당해고 분쟁을 일으켜 급여 상당액을 얻어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부분이죠.

물론 반론도 가능합니다. 이 사람이 그 전에 분쟁을 일으키는 전문가 속칭 '꾼'이었는지는 어찌 보면 개별 사안 판단에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노동위원회도 나름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인데 사용자를 괜히 도발해서 교묘하게 문제를 키우는 방식 자체가 나쁘죠. 하지만 막상 해고감이 되느냐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쉽지는 않은 것이죠.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A씨의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처음에 급여 등 문제만 거론하고 휴일 등에 결정이 안 된 부분이 바로 키 포인트인데요. 사흘간 일을 시키고 계약서를 쓰면서 세부사항을 정하는 게 일종의 업계 관행이라는 회사 주장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죠.

휴일도 문제지만 근로기간 등 계약의 주요한 부분에 아직 의사가 확실히 합의되지 않은 것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짚었습니다. 그러니까, 근로계약의 주요 부분에 대한 합의가 없으므로 아직 근로계약 체결 자체를 안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고용도 안 되었으니 해고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만큼 부당해고 여부는 당연히 더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이 사안은 일종의 파파라치, 여기서는 부당해고 이후 금품 합의를 노린 노동 사안 전문가이니 '노(勞)파라치'라고 부르도록 할까요? 이 노파라치 문제를 응징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를 눈감은 게 아닌가 아쉬움(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요.

고용의 단추를 처음 꿰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고용이 아직 확실히 계약으로 체결된 게 아니라고 의외의 돌파구를 마련한 점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위험성도 있어 보입니다.

휴일은 물론 기간 등 계약의 주요 부분에 합의가 없었다는 게 중노위 쪽의 논거지만, 여기도 몇 가지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지금이냐 해고가 쉬워지고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지금에서나 좀 흔들리고 있을 뿐, 일단 입사하면 계속(정년 등 여러 사유 없이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일종의 상식으로 돼있었죠.

바로 이런 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자세한 설명 없이 넘어가 버린 면이 있습니다. 일단 급여 등 대강의 조건만 서로 맞추고 일을 시작하면 근로계약은 맺은 것이고 몇몇 내용을 추가로 보충하도록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 근기법에는 3개월 기간을 정해 수습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고,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쉽게 내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짧지만(3일이든 5일이든 간에) 계약을 안 한 상태에서 사람을 고용하도록 하는 또 다른 틀을 허용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더욱이 막상 시비를 일으키기 위해 여러 가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하려면 나오지 마라'는 정도로 간단히 사람을 정리한 문제를 넘어가는 것도 옳지는 않아 보입니다.

결국 이 사안은 일종의 수습 상황에서 내보낸 것으로 사용자 손을 들어줄 다른 방법도 있었던 게 아닌가 우리에게 추가 고민을 남깁니다. 중앙노동위가 괘씸한 A씨 대신 (상대적으로) 선량한 회사 손을 들어준 이유는 이해되지만, 에둘러 가면서 세밀히 논증하기 번거로워 너무 쉬운 길로 간 건 아닌지 그런 의견을 덧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