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전혜인의 이런 마니아] 픽사, 어른을 위한 동화

전혜인 기자 기자  2016.09.12 18:35:3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누구나 취미생활 하나쯤은 있겠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해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 등을 보며 머리를 바쁘게 쓰기도 합니다. 그런 대신 지갑을 분주하게 여닫는 이도 있겠죠. '이런 마니아'에서는 현대인들의 여러 수집 취미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소개합니다.

얼마 전 디즈니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요. 오늘 소개할 픽사는 바로 그 거대 문화기업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자회사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죠.

픽사의 시작은 '스타워즈'로 유명한 영화사 루카스필름(이 회사도 결국 지난 2012년 디즈니에 합병됐죠)의 컴퓨터 사업부문이었습니다. 1986년 루카스필름 경영난으로 급하게 매각하게 되면서 당시 애플에서 잠시 나와있던 스티브 잡스가 1000만달러에 이 작은 회사를 사들여 당시 판매하던 컴퓨터 모델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주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이 컴퓨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잘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정도로만 애니메이션을 대했죠. 그러나 잡스의 기대와는 달리 픽사의 초기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죠.

1991년, 픽사는 컴퓨터 사업 부분을 대부분 정리하고 컴퓨터 사업에서의 거래처였던 디즈니에 함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당시 아쉬울 것이 없던 디즈니가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1995년 '토이스토리'로 픽사의 시대는 막을 올리게 되죠.

토이스토리의 성공부터 △몬스터 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 △인크레더블(2004) △월-E(2008) △업(2009) 까지, 픽사의 2000년대는 그야말로 전성기였습니다. 내놓는 모든 영화마다 히트를 쳤죠.

특히 90년대 말 침체기에 빠진 디즈니를 대신한 픽사의 흥행은 놀라울 정도였죠. 결국 디즈니는 당시까지의 협력 관계에서 픽사를 직접 지분인수하기에 이르고, 지난 2006년 픽사의 주식과 디즈니의 주식을 1:2.3의 비율로 맞교환하는 인수합병에 이릅니다.

디즈니에 합병돼 자회사가 된 이후에도 픽사만의 독특한 매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디즈니가 '완벽히 아름답게 짜여진 동화 속 세상'을 우리에게 꿈처럼 보여준다면, 픽사의 매력은 역시 여기 이 현실과 비슷한 세상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겠죠.

픽사의 영화들은 '소년이 대학생이 돼 아끼던 장난감을 버리고 집을 떠나는 순간'(토이스토리3)이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에서 끝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로봇'(월-E) 등 꽤나 서글프고 현실적인 세상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기도 하고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그렇지만 "이 세상은 항상 아름답고 사랑으로 가득 차있어요"라는 공주님과 왕자님의 이야기보다 "살다 보면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가끔은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들이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납득하기 쉽죠. 픽사 작품들은 영화관에서 어른들이 울면서 나온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요.

픽사에게도 위기는 있었죠. 2009년 개봉한 업의 성공 이후, 오리지날 스토리의 고갈과 후속 작품들의 부진으로 잠시 주춤하던 픽사는 지난 해 개봉한 우리 마음 속 감정들의 이야기 '인사이드 아웃'으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올해는 니모를 찾아서의 후속편인 '도리를 찾아서'를 선보이기도 했죠.

그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를 좋아하는 팬층이 탄탄한 픽사의 마니아들은 캐릭터 상품에는 그닥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디즈니의 공주님처럼 화려하거나 예쁜 그림체가 아니라 익살맞은 표정이 강조된 캐릭터기 때문에 더욱 그런 오해를 받지만 사실은 픽사 캐릭터 제품만을 수집하는 마니아층이 아주 탄탄합니다.

이런 마니아층을 위해 GS리테일은 디즈니·픽사와 제휴를 맺고 GS25를 시작으로 자체 브랜드 음료에 픽사의 캐릭터 마그넷 36종이 랜덤으로 증정되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죠. 이런 이벤트에는 빠질 수 없는 필자 역시 편의점을 찾아가봤지만 웬걸, 금방 품절이더군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실에도 동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정한 이야기일까요? 픽사가 앞으로 또 어떤 어른을 위한 동화를 준비할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