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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한진해운 위기 키운 '전문경영인 책임론'

김영민 전 사장 시절 과도한 용선료 계약 '최대 패착'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9.09 17: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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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적 해운사 한진해운이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해운업계 안팎에서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등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최 회장은 시숙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2014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겨주기 직전까지 그룹 경영의 최고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

이런 최 회장은 사실 부군(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작고 이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였기 때문에 열의를 갖고 경영수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경영전문가들의 발탁과 배치 이른바 용인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지금 한진해운이 쓰러진 상황을 '최은영 용인술 실패'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르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용인술 실패라기 보다 전문경영인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론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가 높다. 단순한 용인술 실패로 볼 경우 기업 내의 견제 기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재벌 문화를 정당화시키자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2008년 이래 계속돼 온 경기침체 국면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물타기 지적 역시 한진해운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김영민 전 한진해운 사장 등의 경영상 판단이 회사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 데 크게 작용한 만큼 이들에 대한 책임 규명을 명확히 해야 청산과 회생 기로에 선 한진해운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민 전 사장 총체적 경영 부실 '수렁 속으로'

김영민 전 사장은 경영 실적 부진과 영구채 발행 지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13년 11월 사의를 표명했다. 최 전 회장은 2009년 외국계 은행 출신의 금융인인 김영민 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은 글로벌 금융 감각을 해운업에 접목시키기 보다는, 해운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한진해운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렸다.

무엇보다 2010~2011년 호황에 대비하겠다는 목적으로 비싼 가격을 주고 선박을 대거 빌린 것이 최대의 패착이었다. 최근까지도 한진해운의 발목을 잡은 용선료 문제는 상당수 김 전 사장 시절에 계약한 것들이다. 금년 여름 현재 1만3000달러 수준인 용선료를 3만~4만달러까지 지불했던 것이다.

이는 한진해운을 유동성 부족 위기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김 전 사장이 취임할 당시 155%에 불과했던 한진해운 부채비율을 물러날 무렵에는 1445%에 이르렀다.

조용민 전 한진해운홀딩스 대표이사의 경우도 외국계 은행 출신. 1995년 한진해운으로 옮긴 후 벌크본부장과 해외협력 부사장을 거쳐 한진해운이 해운과 홀딩스로 분리될 때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조 대표는 자사주 매입과 급여 10% 삭감 등 회사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2011년 11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가 다시 세간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는 의혹 때문. 2008년 10월 조 전 대표는 최 전 회장과 공동명의로 회사와 무관한 서류상 회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2013년 해당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 한진해운 측은 최 전 회장은 이런 회사와 연관성을 갖고 있을 특별한 필요성이 없어 2011년 이 회사에서 발을 뺐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세피난처에 명목상 회사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범죄 행위로 볼 수는 없지만, 단순한 기법상의 편의성 때문에 만들고 사용하기 보다는 우회적인 자금 동원이나 세탁 채널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요주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운 등 해외 거래 수요가 많은 기업에서 이런 수단의 유혹에 빠져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경영 방향을 잡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김 전 사장 등 이 이전에 없던 금융위기 국면에서 예측에 실패했다거나, 해외 대형선사들의 치킨 게임 국면에서 중과부적으로 실패했다는 해석은 일정 각도만 반영한 것이다. 특히나 경영권 장악 등 오너 일가의 이익 문제나 단기적인 자금 조달 추진 등에 매달리면서 전문성을 잘못 활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 대책 급급, 기업 회생 골든타임 놓쳐

용선료 관련 배팅도 문제였지만, 과거 호황기 때 발주했던 선박이 인도되며 심각한 공급 과잉에 빠진 상황에서도 대응 방향을 잘못 잡고 행진을 계속한 점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외부에서 수혈된 금융전문가로서의 특기를 발휘할 기회를 스스로 망쳤다는 것.

선박 인도와 용선료 등으로 계속 재무 부담이 높아지자 한진해운은 금융권 차입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이후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대응하는 게 통례가 됐다. 그 결과 차입구조가 단기화되고 영구채 발행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문제는 후에 대한항공이 나서면서 겨우 숨통이 트이는 듯 싶었으나 결국 위기의 본질적 해결에는 실패하게 된다.

위기 돌파구로 유상증자를 택했던 것도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면서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경제 전반을 살피는 포괄적인 분석과 중장기적인 전망이 아니라 단기적인 금융 기술 활용에만 치중해 결국 언 발에 오줌을 눈 것처럼 문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흐른 데에는 판단 실패가 아니라는 풀이도 나온다.

오너 일가 경영권 방어라는 점에 치중해 어떤 이슈든 간에 왜곡된 판단으로 흐를 소지가 다분했다는 것.

경영전문가가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 등 문제적 판단에 참여한 상황은 이미 언급했지만, 그 외에도 경영권 확보와 보호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판단을 하거나 더 좋은 선택지를 거절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것 같은 문제는 적지 않다.

이런 문제의 누적이 단기 금융 유동성에만 급급하고 전체적인 업황 대응에 실패하는 등 상황과 맞물리면서 한진해운을 실패로 몰아갔다는 풀이도 나온다.

◆회사 위기 외면한 전문경영진 문책 불가피

2009년 연말 한진해운과 한진해운홀딩스 분리 국면에서, 한진해운 자사주가 사모펀드에 대거 매각된 적이 있다. 이와 함께 사모펀드가 매입한 지분은 한진해운 자회사인 사이버로지텍이 4년 뒤 매입할 수 있다는 계약이 체결됐다.

한진해운측이 이 같은 계약을 한 데에는 당시 크게 절박한 상황적 배경이 없었던 것으로 풀이됐다. 단지 대한항공쪽의 지분을 희석하는 효과로 최 전 회장측 경영권 강화를 위한 기교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 같은 대한항공(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한진해운(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갈등과 견제는 결국 조 회장의 결단 없이는 완전한 계열분리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최 전 회장 측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고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결과론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실제로 사모펀드로의 자사주 매각 건 외에도 2011년 한진에너지 유상감자 참여 문제도 한진해운 측에서 최 전 회장과 경영권이라는 면에만 매달린 처리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유상감자 참여를 통한 한진에너지 지분 처분은 지주회사인 한진홀딩스의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 충족 및 재무구조 개선에 따라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돼 배임 등 논란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진에너지가 당시 에스오일 지분 28%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 한진해운 외 주주들이 대한항공 계열사들이어서 사실상 독자적인 유상감자 진행이 일종의 매각 행위라는 풀이가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안을 패착으로 볼 여지가 높다.

당시 가치로 3조를 훌쩍 넘는 에스오일 지분을 갖고 있었던 한진에너지는 2010년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한 부채 1조원선을 감안해도 2조원대의 가치가 있던 기업이었다.

따라서 한진해운이 당시 갖고 있던 한진에너지 지분 16%는 3500억원까지도 잡을 수 있는데, 정작 한진해운은 한진에너지 최대주주 대한항공이 유상감자에 불참해 지분 전량을 처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만 집중, 일을 매듭지었다. 당시 한진해운에 유입된 돈은 1600억원이 조금 못 됐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은 결국 지주사로의 전환, 계열분리 등 대한항공과의 결별을 위해 이뤄진 일련의 행보로밖에는 요약되지 않는다.

결국 경영전문가들로서 금융지식과 폭넓은 시각, 혹은 내부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발휘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호위무사 역할에만 매달렸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좁고 왜곡된 시각의 판단이 여과되지 않았고, 최 전 회장에 대한 견제는 아예 언감생심이 됐던 셈이다.

과거 재벌그룹의 임원들이 창업주나 그 일가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끌려간 점보다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진화된 형태라는 점에서 오히려 오너 일가 리스크로만 편리하게 언급하기 보다는 전문경영인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또 이런 특수한 문제로 연쇄적인 기능 저하가 일어나 회사에 문제가 일어난 경우에 대한 대처 방안 역시 우리 경제 일반에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주문도 가능하게 한다.

문제를 일으킨 병폐가 특수한 기능적 오류임이 확실하고 여전히 기업의 역량과 펀더멘털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으로 기업 재건과 회생을 단념해야 하는 경우와 구분해 볼 여지가 있다.

한진해운 붕괴 위기의 내밀한 측면과 책임론 저울질이 지루해도 꼭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