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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형의 M&M] 두 번 다시 불려선 안될 아름다운 '투쟁가'

이윤형 기자 기자  2016.09.07 09: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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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M(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때로는 거칠고 위협적인 목소리보다는 나긋한 노래 한줄기가 더 큰 힘을 갖곤 합니다. 아마 듣는 이들의 연민을 자극해서겠죠. 여기 서정적인 멜로디와 애수가 느껴지는 가사만으로 대중들을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곡이 있습니다. 잔잔한 선율의 이 곡은 그 어떤 노래보다 강력한 투쟁가로 남았습니다.

「M&M」에서 세 번째로 다룰 곡은 프랑스 샹송 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 작사·작곡한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입니다.

이 곡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샹송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편곡해 드라마 '겨울연가'에 'When the Love Falls'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죠. 싱어송라이터이자 수필가인 오태호씨 영원한 어린 왕자 이승환과 '이오공감'이라는 앨범을 내기도의 1집 타이틀곡 '기억 속의 멜로디'에 샘플링되기도 했습니다.

-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에, 정원에는 꽃들이 피어올랐지. 세월은 흐르고. 기억들만이 남았네. 그리고 네 손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중략)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어요. 굴착기는 꽃밭을 갈아엎었어요. 이제 새들이 노래할 곳은 공사장뿐이네요. 그 때문에 사람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가요? -

이 노래의 가사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70년대 프랑스 재개발 지역에서 자신의 작은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루시엥 모리스(Lucien Morrisse)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만들어진 노래인데요.

미셸 폴나레프가 이 곡을 내놓자 당시 샹송으로 대중문화에 선봉에 서있던 가수들도 따라 부르며 대중들에게까지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인트로부터 진한 서정적 향기를 부르는 이 곡은 사실,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소시민의 작은 행복까지 유린하는 권력자의 폭력을 고발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잔잔한 추모곡이지만 투쟁가로 남게 됐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1980년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가 '5월의 광주 항쟁 민중가요'로 편곡돼 불리기도 했는데요. 개사된 가사는 이렇습니다.

-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중략)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원곡에 비해 강경한 가사죠. 이 노래가 불려진 시기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봉기한 시민들이 정부군에게 학살당한 10·26 사태 이후이니까요. 그렇지만 모르긴 몰라도 미셸 폴나레프와 프랑스 대중들도 이 같은 분노를 느꼈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아직도 강제철거 같은 반인권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위한 빈민가 강제철거, 집값만을 걱정하는 고가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길거리 포장마차 철거 같은 일들이 벌어져도 철거민들을 위한 대책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죠.

전국철거민협의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개발지역은 매년 2000여곳에 이르지만, 개발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대책위원회 구성 비율은 5%도 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개발이익을 보기 위한 사업시행처와 사업시공사들의 강압적 행사에 철거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행정기관은 그저 철거 이후 '유감이다' '사죄한다' 말만 되풀이할 뿐, 분열을 막기 위한 명확한 대책은 세우지 않습니다.

마스트리흐트 가이드라인(Maastricht·1997년)과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제77호(1993년), 제2차 세계주거회의 해비타트 의제(Habitat agenda·1996년) 등 국제인권 문서에는 '무리한 강제퇴거와 강제철거 금지'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70년대부터 불려온 이 노래처럼 쫓겨나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철거 분쟁 시 철거민들을 위한 대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해 제2, 제3의 루시엥 모리스 할머니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Qui A Tu Grand Maman - Michel Polnare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