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달 31일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한진해운으로부터 야기된 물류대란 사태가 절정을 찍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한진해운 모기업인 한진그룹까지 초기 대응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선주협회 등 업계는 이미 지난달 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화물감소나 운임폭등 등으로 연 17조원의 금액적 손실 및 2300여개의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고 정부와 채권단에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채권단과 정부는 "법정관리에 따른 후유증은 업계가 예상하는 정도까지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30일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자금 추가지원을 거부했고 그 다음 날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그러나 전 세계 해운 운임이 법정관리 신청 전보다 평균 30% 상승하고 40여개 항구에서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가 이어지는 등 사태가 심각하게 흘러가자 당국이 오히려 더 당황하는 모양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법정관리로 인한 물류대란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어처구니없이 말하기도 했다.
6일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한진해운 선박 중 압류 등으로 운항에 차질을 빚는 비정상운항선박은 73척(컨테이너선 66척·벌크선 7척)이다. 비정상운항선박이 한때 87척까지 늘었다가 현재 소강세로 돌아선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다.
물론 이번 물류대란을 불러온 한진해운 부실의 1차적 책임은 한진해운 당사자와 모기업인 한진그룹에 있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예견했으면서도 물동량 감산 및 관리 중 필요한 대금마련 등 필요한 비상대책 마련에 소홀히 해 전 세계 해운시장에 더욱 큰 위기를 초래했다.
이에 한진해운은 해외 선주들로부터 최대 140억달러 규모의 국제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이틀 후인 지난 2일에야 스테이오더(선박압류금지명령)을 신청함에 따라 한진해운 해상직 직원 800여명이 입항 불가 상태로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해상난민'이 될 처지에 놓였다.
한진해운 직원들은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서운하다는 반응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과연 한진해운을 살릴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것. 특히 이미 마련한 2조2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서 채권단이 추가 자구안을 요구한 것에 대해 '과연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이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전·현직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뜨거운 대우조선해양에 지난해 4조2000억원, 올해에는 출자전환을 통해 1조6000억원을 추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채권은행을 비롯해 금융당국은 노동력 기반의 조선업과 자본 중심인 해운업을 같은 선상에서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우조선은 주 공장도 국내에 있고 근로자도 국내 인력이 중심인 데 비해 한진해운 등 해운업은 외국 선주에게 배를 빌려 운영하는 형태로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해도 결국 외국인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서별관회의 등 대우조선에 대한 비정상적인 지원 사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부담을 느낀 관료들이 한진해운 등 구조조정 중인 기업에게 자금 지원 결정을 내리는 책임을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결국 관료들의 관료주의가 이번 물류사태를 만들었다는 견해다.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 없이 회피를 거듭하던 한진해운 사태는 결국 전 세계에 큰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겨우 수습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6일 새누리당과 정부는 당·정 협의회를 열어 한진해운에게 장기저리자금 1000억원을 지급할 것을 검토했다. 이에 더해 한진그룹도 조양호 회장의 사재 400억원을 포함, 1000억원을 출연해 물류대란 해소에 힘을 보태겠다고 알렸다.
세계 8위, 국적선사 중 1위였던 한진해운을 두고 이 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무원칙 대안책이 난무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뒤늦은 수습으로 떨어진 국격과 신인도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겠지만, 적어도 해외에서 위험에 노출된 한진해운의 해상직 및 해외주재 직원 900여명의 안전한 귀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