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는 보름달만 한 가로등이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설치돼 있다. 밤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파트 화단에 나가 조용히 밤의 정취를 즐기곤 한다.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화단에 나가 서늘해진 초가을 바람을 만끽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가로등 옆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엄지손가락만한 거미가 가로등 바로 곁에 줄을 쳐 두고 날벌레들을 포식하는 모습이었다. 참 꾀가 많은 녀석이었다. 보통 거미들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숲 사이나 담벼락 사이에 줄을 치는데, 이 녀석은 환하게 켜진 가로등 바로 곁에 줄을 쳐 두었으니 얼마나 많은 벌레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을까. 사람으로 치자면 아주 잔꾀가 많고 세상사에 밝은 약삭빠른 이와 같다고 하겠다.
오늘 아침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화단에 나가보니 어젯밤 화려했던 거미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마도 관리사무실에서 새벽 청소를 하던 중에 모두 치워버린 모양이다. 하룻밤 포식을 한 거미의 저녁식사가 마지막 만찬이 돼 버렸다.
우리는 매일 기술을 배우고 삶의 방식을 익힌다. 성공을 갈망하며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얕은 꾀와 약삭빠른 수법으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높은 곳에 이르기도 한다.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처세에 능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일컫기도 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솔직하고 무던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갑부가 되지도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에 본보기가 되며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나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의 정보를 손에 쥘 수 있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손바닥 안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즉시 허리를 숙여 내용물을 확인해야 하고, 편리하자고 만들어 놓은 에스컬레이터를 마구 걸어다닌다. 시대의 빠른 변화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급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편안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 개발된 모든 물질의 혁명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바쁜 일상으로 몰아넣고 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한다. 돈을 많이 벌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져야만 성공했다고 보는 성향이 강하며,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소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직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됐다.
빨리 간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약삭빠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진실로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며,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소신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빛이 환한 가로등 곁에 거미줄을 쳐두면 순식간에 엄청난 날벌레를 잡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가로등 곁을 선택한 거미의 삶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천천히, 그리고 진실하게 살도록 하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소명을 찾을 때가 왔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최고다 내 인생> 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