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시각장애인의 직업을 생각하면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안마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안마사 자격증은 시각장애인에 한해서 발급되기 때문.
그러나 정규직으로 일하며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룬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바로 한빛예술단의 연주자들이 그 주인공. 가을이 성큼 다가온 날씨를 느낄 수 있었던 이달 1일 수유동 한빛예술단을 방문해 이곳 전성균 부단장에게 지난 13년간의 얘기를 들었다.
◆50명 예술단원, 세계 유일 시각장애인 예술단체
한빛예술단이 창단된 것은 지난 2003년. 김양수 한빛예술단 단장은 감각이 예민하고 음감이 뛰어나다는 시각장애인의 장점을 살려 한빛예술단을 창단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당신 한빛맹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던 음악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을 모아 10여명의 초창기 한빛예술단이 꾸려졌다.
한빛예술단의 특징은 공연 중 지휘자와 악보가 없고 사회자와 송수신기를 이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악보를 통째로 외워 연주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통오케스트라 장애인예술단체는 한빛예술단이 유일하다.
전성균 부단장은 "현재 한빛맹학교 음악 전공 2년 과정 졸업자들이 예술단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며 "물론 전국 오디션을 통해 뽑기 때문에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현재 유학을 다녀오거나 콩쿠르 입상자들도 수석단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연주하는 음악이지만 수준은 일반 예술단체들과 다르지 않다. 한빛예술단은 지난 6월 국내 최대 아트마켓인 '제9회 제주해비치페스티벌' 쇼케이스 무대에 올라 152개 문예회관 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우수작 선정심사에서 최다득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50명 단원 모두 정규직으로 근무
한빛예술단은 세계 유일 시각장애인 예술단체로 국내에서도 '처음' 많은 일을 해냈다. 2003년 창단 후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돼오던 한빛예술단은 2008년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와 협업해 사회적기업 등록에 성공했다.
당시 장애인들이 하는 공연,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기업 전례가 없어 사회적기업 등록 과정이 쉽지 않았고, 특히 2013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받던 인력지원이 끊긴 뒤로는 구조조정을 겪었다는 회상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현재 한빛예술단은 서울시로부터 장애인직업 재활시설로 인정을 받아 일부 직원들의 인건비를 지원받고 있다.
아울러 한빛예술단의 공연은 올해 초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인정받았다. 국가기관이나 전국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는 총 구매액의 1%를 장애인 생산시설에서 생산한 물품에 할애해야 하는데 한빛예술단의 공연도 생산품으로 인정돼 판매할 수 있게 된 것.
이 밖에도 현재 한빛예술단은 장애인 단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해 운영 중이다. 평균임금은 140만~150만원가량으로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는 높은 수준이다. 연매출은 7억~8억원 정도로 인건비와 공연준비 등에 대부분 쓰이고 있다.
전 부단장은 "단원들이 모두 중증장애인인 만큼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스태프들도 필요하고 식비와 음향장비·버스 임대 등 일반 예술인이 공연하는 것에 비해 많은 것이 더 필요하다"며 "그만큼 기업과의 정기적인 공모사업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여기 보태 "기업과 연간 공모사업을 진행하면 연계고용 효과가 일어나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에도 도움이 되는데 기업들이 이 같은 제도를 잘 활용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연 통해 '인성 바로 세우기' 운동 앞장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 서며 감동을 전하는 한빛예술단은 이를 통해 장애인 인식개선과 '인성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인성바로세우기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장애인이지만 끊임없이 노력과 연습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것이 한빛예술단의 목표다. 특히 학교와 교도소에서 진행하는 공연은 큰 효과를 거뒀다.
한빛예술단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공연에도 초청받아 공연을 펼쳤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국제 페스티벌 초청공연, 베트남 하노이 한·아세안 정상회담 축하 'HOPE CONCERT', 한 ·중 수교 20주년 기념음악회 등을 통해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의 위상을 알리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전국의 시각장애인은 물론 해외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음악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북한에도 시각장애인 예술단원이 30명쯤 있는데 이들과 협동공연을 추진하다가 중단됐다"며 "여러 나라의 시각장애인들과 음악을 함께 하며 한빛예술단의 노하우도 알려주고 장애인 예술가들의 수준을 높이면서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최종 꿈"이라고 제언했다.
다음은 전성균 한빛예술단 부단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한빛예술단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한빛예술단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김양수 단장의 대내외 업무를 도와 전체적인 총괄업무를 진행한다.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을 만나 계약을 진행하는 일 등도 전담하고 있다.
-입사 전 어떤 일을 맡았었고 한빛예술단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한빛예술단은 지난해 1월1일자로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입사 전에는 교육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으며 특수교육 및 장애아동들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정년퇴임 후 사회활동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는데 한빛예술단 공채 채용 공고문을 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됐다.
-입사 후 근무만족도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현직에서 일을 해보니 장애인 제도의 개선돼야 할 점도 많이 보이고 장애인들과 생활을 공유하며 근무하다 보니 느끼는 점 또한 많다. 옆에서 단원들을 도우며 공연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말해달라
▲학교와 교도소에서 진행했던 공연이 특히 반응이 좋아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의 나태했던 학교생활이 개선되고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들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연주곡 한 곡을 완성하는데 두 달이 걸리는데 이 속도로 50~100곡을 모두 암기하고 연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장애인이지만 꿈을 이뤄냈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다문화가정, 탈북자들, 해외동포들 대상으로도 공연을 진행했는데 공연장이 눈물바다가 됐었다.
-한빛예술단에서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무산됐지만 북한의 장애인 예술단과 합동공연을 준비했었다. 북한과의 작은 통일이라고 생각해 기대가 큰 공연이었는데 무산돼 아쉬움이 컸다. 향후 기회가 있다면 두 나라의 장애인 예술단체 합동공연이 성사됐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남북평화에 기여하고 싶다. 장애인들에게도 남북평화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