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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인의 혀끝에 척] 서양 햄, 동양 찌개문화의 콜라보 '부대찌개'

"존슨탕,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 姓 따왔다네"

하영인 기자 기자  2016.08.31 18: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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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단지 가만히 있을 뿐인데 괜히 공허한 마음이 든다. 입이 심심해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먹는 게 곧 쉬는 것이자 낙(樂). 필자 포함,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우리 혀끝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탐구해본다.

어린 시절, 네모난 햄을 쏙쏙 찍어 먹고 동그란 소시지를 열심히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 '부대찌개'를 참 좋아했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각과 후각, 청각까지 자극하는 얼큰한 부대찌개는 음식전문점에서도, 부대찌개 라면·도시락도,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부대찌개도 웬만하면 다 맛있다. 역시 부대찌개는 다양하고 풍성한 재료가 맛의 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나 싶다. 

어릴 적 이태원에 있는 아늑하고 정감 가는 한 식당에서의 일이다. 메뉴판에는 부대찌개가 아닌 '존슨탕'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존슨탕…? 대체 이름이 뭐 이러다냐. 이모, 존슨탕의 뜻이 뭔가요?"

끝내 가게에서는 답변을 들을 수 없었고, 지인들과 필자는 소시지를 썰면서 시시껄렁한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으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사실 부대찌개는 '군대의 찌개'라는 뜻이다. 6·25전쟁 직후 서울에서 음식이 부족해 일부 사람들이 미군부대에서 쓰고 남은 햄과 소시지 등 남은 음식을 이용해 끓여 먹은 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이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서 존슨탕이라고도 부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후 존슨탕이 눈에 참 많이도 들어왔다.

"무지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독자들의 동의를 구한다.

◆동서양 식문화의 조합…꿀꿀이죽-UN탕-부대찌개

'부대'찌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의 비극을 담은 존슨탕의 탄생배경은 사뭇 씁쓸하다. 

부대찌개가 만들어진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미군부대 주변 사람들이 재료를 주워 바로 찌개로 끓여 먹었다는 것과 원래 볶음이었는데 짠맛이 나고 양이 적어 물을 부었더니 부대찌개가 됐다는 것 정도가 있다. 

심지어 휴지나 비닐, 담배꽁초 등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까지 온갖 재료를 모아놓고 끓인 '꿀꿀이죽'이 유래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꿀꿀이죽에서 발전해 '유엔탕(UN탕)'이 만들어졌고, 이와는 별개로 부대찌개는 김치찌개에 햄과 소시지를 넣어 먹던 것이 부대찌개가 됐다는 주장을 펼친다. 

부대찌개가 꿀꿀이죽에서 발전된 음식이 아니라 햄과 소시지가 귀하던 시절 사정이 넉넉한 집에서만 먹을 수 있던 고급음식이라는 것. 

우리에게 생소하기만한 UN탕의 경우 1960년대 말 경제사정이 조금씩 나아지자 음식물쓰레기에서 먹을 만한 것들만 골라 끓인 것이라고 한다. 남대문시장 가판에 UN탕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햄과 소시지를 제대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년도 채 안된 1980년대였다. 때문에 원조 부대찌개는 미국산 햄과 소시지를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염도가 높은 미국산 햄과 소시지를 그냥 먹기 힘들어 국물에 넣어 우려먹게 된 것이 부대찌개의 시작"이라며 "그렇기에 지금도 염도가 높은 미국산 햄과 소시지를 쓰는 편이 더 맛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원조 부대찌개의 발상지는 이곳저곳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곳이 의정부다. 부대찌개집이 하나 둘씩 늘어나자 지난 1998년 '의정부 명물찌개 거리'라는 정식명칭도 생겼다. 

◆해외서도 환영받는 '부대찌개'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던 짜장·짬뽕라면의 인기가 시들자 라면업계는 새로운 카드로 부대찌개라면을 내놓은 모양새다. 

지금에서야 부대찌개라면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지난 1999년에 이미 출시된 바 있다. 농심의 '찌개면'이다. 국내에서는 2년 만에 판매가 중단됐으나 일본에는 지속적으로 소량 수출돼왔다. 

찌개면을 그리워한 일부 소비자들은 일본에서 역수입하는 웃픈 헤프닝도 벌어졌다. 현재는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으로 이름을 바꾸고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음식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부대찌개. 오늘날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찌개로 꼽히며 해외로도 진출 중이다.

특히 부대찌개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즐겨 먹는 음식 2위에 오른 만큼 중국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가진다.

국내 부대찌개 브랜드 중 첫 해외진출에 성공한 '놀부부대찌개&철판구이'는 지난 2014년 중국 상해 1호점을 오픈했다. 오는 2019년까지 중국에 놀부부대찌개 직영점 30개와 500개의 가맹점을 열겠다는 목표다. 

또 일본에 이어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킴주'라는 한식 프랜차이즈 식당의 부대찌개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라면 소비량이 덩달아 늘었을 정도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밤, 허기를 달래줄 부대찌개가 당긴다.

"이모, 여기 라면사리 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