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8.30 11:21:38
사용자 주장: 안녕하세요? OO장애아재활센터입니다. 저희는 **복지법인이라는 곳 소속이지만, 사실 겉보기나 업무로나 OO대학교 소속기관처럼 돼 있습니다. 이 학교와 계약을 맺고 시설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OO대학교의 시설 및 운영을 지원하고, 산학협력 및 청소년복지 및 지역사회와의 연계사업 운영을 하는 법인'이라는 거창한 계약 목적이 있지만 직접 운영하기 손이 많이 가는, 장애아재활시설센터의 운영만 맡았다고 보시면 돼요. 이 학교에는 특수교육학과가 있어서 장애아재활시설센터와 학과 간 협력과 실습 수업도 필요하고, 설립자의 사회공헌 정신 때문에 시설이 세워졌지만 요새 세태가 워낙 아웃소싱이 대세라 말이죠. 저희가 지금까지 거의 학교 정직원이거나 학교 부서인 듯 아닌 듯 편하게 지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건 사실 3년마다 맺게 된 계약을 오랜 시간 무난히 연장해왔기 때문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저희 법인도 사실 언제고 다른 법인에게 일이 넘어가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태인 겁니다. 정원은 10명인데요. 학교와 맺은 계약을 보면 '△센터장 1명 △팀장 1명 △치료사 7명 △기능직 1명'입니다. 치료팀장이 치료사들을 지도하게 돼 있으니 조직 자체가 재활 전문가들 중심으로 짜여진 셈이죠.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기능직으로 된 인원 1명으로 운전기사를 채용해 데려오고 또 데려다주는 것을 보조해왔습니다. 사실 운전기사는 복잡한 업무를 보는 게 아니므로 계약직으로 뽑았지만, 특별히 성격이 모난 사람이 아니고 이것저것 저희 센터의 자잘한 업무도 거들고 해서 큰 탈 없이 근 10년 새 매년 갱신하며 지내왔고요. 그런데 대학 재단에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도시는 교통이 편리하고 센터 인원이 매년 줄어드니 버스를 따로 운영해 교통지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치료직을 하나 더 뽑는 게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운전기사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사실, 언제고 우리 직장이란 게 업무가 완성되면, 즉 OO대학교에서 재활센터 운영 업무를 위탁받는 게 종료되면 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건 '근무자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매년 갱신하는 방식으로 계약서도 써온 거고요. 그래서 저희 센터에서는 이제 자리가 없어지게 되니 해고를 해야 한다, OO대학교와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인근 ㅁㅁ고등학교 스쿨버스 운전기사직에 우선 채용을 해준다고 하니 그쪽으로 지원하라고 언질도 줬습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거부하고 있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근로자 주장: 안녕하세요? 저는 OO대학교 장애아재활센터에서 일해온 운전기사입니다. 센터와 매년 계약서를 갱신하면서 이곳에 근무해온 지도 벌써 10년 세월이네요. 사실 운전면허가 있으니 어딜 가도 굶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전과 오후에 서너 시간 운전을 해서 아이들을 태워다 주는 게 제 업무죠. 뭐, 센터장님이 남은 시간에 이것저것 잡무도 시키고 안내나 시설관리나 정돈을 맡기기도 할 정도니까 남 보기에는 한가해 보일 지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런 잡일을 떠넘기는 게 달가운 건 아니지만, 계약서에 기능직으로 돼 있어서 그러려니 생각도 들고, 또 좋은 일 하는 직장에 들어와 있으니 몸 불편한 아이들과 학부모 돕는다는 생각에 그냥 군말 없이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예전에 처남이 그러던데, 이제 계약직 신세여도 한 곳에서 들락날락하지 않고 오래 계속 일하면 사실상 못 자르는 특수한 고용직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처남이 그 이야기를 할 때는, 혹시 일단 내보냈다 계약서를 다시 꾸미자고 할 거라고도 했지만 저희 직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 역시 좋은 일하는 곳이라 다르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죠. 월급 같은 고용조건은 좋아진 게 없었지만, 이제 정규직인 셈이다 싶었죠. 그래서 더 기운이 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운전기사가 필요 없다, 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니 기간제 근로자 보호와는 상관이 없다며 나가달라는 겁니다. '특정한 업무가 완성된 경우'라나요? 그런데 **복지법인과 OO센터가 계약을 서로 안 맺기로 한 경우도 아니고, 분명히 제가 다니는 곳도 그대로 있고, 또 운영하는 주체인 법인도 그대로잖아요. 이렇게 필요 없다며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 건가요? 운전기사만 콕 찍어 없앤 건데, 그럼 반칙 아닌가요? 중앙2015부해342 사례를 참조해 변형·재구성한 사례 |
이 사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명 기간제법의 취지와 각 개별 사업장의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한 경우입니다.
두 문제가 겹친 경우이기도 합니다. 회사 자신도 일종의 기간제 상태인데, 그 기간제 회사에 고용된 기간제 근로자의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기간제 근로자가 본래 업무 외에 여러 일을 떠맡아온 경우 노동법상 효과는 무엇인가?
기간제법은 제4조 제1항에서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 2항에서 '사용자가 제1항 단서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됐음에도 2년을 초과해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이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했습니다.
사실상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로 장기간 근무를 하는 경우인데 기간제라는 틀을 악용, 불리하고 불안한 위치에 서 있는 근로자를 압박하는 고용 관행이 너무도 만연했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법이었죠. 계약을 행여 갱신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게끔 구제 대책을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사용자 측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 조문의 단서 조항을 주장하는 셈인데요.
제4조 제1항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가 있습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며 아래 여러 예외가 있는데요. 그중 제1호가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문제를 들여다볼까요. 이 사안에서 사용자 측이 우리 센터는 계약을 위탁받는 곳이니, 언제고 업무 종료 가능성이 있는 곳인 게 분명하고 근로자도 이를 분명히 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안에서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사용자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라가서 결론이 왜 뒤집혔을까요? 그 논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우선 이 사건 당사자의 계약서를 보면, 계약 조건에 '이 사건 센터를 위탁하는 기간'에 대한 명시가 없었습니다.
다시, 사안에 언급된 내용을 되돌려 보겠습니다. OO대학교와 **복지법인 간에 센터 운영위탁계약을 3년마다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와의 계약은 1년마다 한다고 돼 있죠.
센터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얼음판 걷는 운영되는 구조(실제로는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이다 보니, 이를 이유로 기간제 근로자에게 계약을 갱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막상 왜 센터가 문을 닫으면 운전기사도 끝이라는 식으로 명확한 거론이 안 돼 있을까요? 이는 사실상 3년에 1번 갱신 여부에 따라 직장이 없어지고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 조건 아래서 또 다른 불안정한 고용 현실이 숨어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안정한 상태라고 해서 그보다 더 짧은 조건으로 고용을 하겠다는 주장 그리고 그 효과에 힘을 실어주는 게 과연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센터와 운명을 함께하는 채용 조건이라고 보기에도 이 운전기사가 처한 조건이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죠.
또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법 제1항 제1호에서 말하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이라는 것은 사용자의 사업 중 특정 사업이 시작되고 끝나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근로계약기간을 특별히 정한 업무의 완성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센터에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업무가 언제까지만 필요하다는 식으로 명시적으로 계약이 됐더라면 아마 운전기사를 해고해도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단순히 센터 자체가 계약 갱신 여부에 따라 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다는 대전제 하나만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을 언제고 내보낼 수 있도록 무한정 허락하는 것은 중앙노동위원회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전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운전기사직의 유지 필요성에 대해 논쟁이 붙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안 운전기사가 워낙 많은 잡무를 해왔던 것이 결정에 참작됐습니다.
운전기사 자리를 없앤다고 해도 이 사람이 그간 해온 업무가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 겁니다. 다른 여러 시설 관리 업무 등을 하도록 또 다른 기능직 자리를 둬서라도 그를 계속 고용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중앙노동위원회의 지적입니다.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을 보면 옷과 분장을 바꿔가며 여러 단역을 한 사람이 소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속칭 '멀티맨'이죠. 기간제 근로자들은 이런 멀티맨 역할을 강요당하면서 그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이런 이들에게 불가피하게 사직을 강요하는 경우도 생길 겁니다. 그때 악용될 수 있는 카드가 바로 특정한 업무가 완성됐다는 주장인데요.
하지만 이런 경우 자리 자체를 없애는 편법을 활용하는 길을 너무도 쉽게 인정해주면 안 된다는 게 기간제법의 기본 정신에 가까운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안은 센터 측 주장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나, 이런 점에 더 치중해 판단하는 게 우리 사회의 상식에 더 가깝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