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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구봉서의 개그철학과 '유상무 회사'의 패기

ST기획 '노예' 채용공고에 막말, '공감없는' 위트 폭력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8.29 1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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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웃으면 복이 와요." 덕담과도 같은 이 말은 사실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조'격인 프로의 제목입니다. 지난 2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1969년 MBC 개국과 함께 고인이 성장하고 직접 키운 프로그램이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그의 개그철학과 맞아떨어지는 표현이기도합니다.

1945년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의 그는 태평양 가극단에서 악사 생활을 하다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라디오, 영화, TV를 가리지 않고 출연한 만능 엔터테이너였죠. 400여편의 출연작 중에서 특히 1958년작 영화 '오부자'에 맡은 '막둥이'라는 배역은 그의 별명으로 굳어졌습니다.

특히 MBC 개국연도인 1969년 그는 연기자 겸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희극작가'라는 개념도 없었을 때라 직접 대본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성한 겁니다. 평소에도 독서애호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고인은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고 하네요.

'코미디언 구봉서'에 대한 평가는 굉장한 일관성을 자랑합니다. 깊이있는 웃음철학을 지녔으며 인생사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어른. 그 바탕에는 코미디를 즐기는 관객(시청자)에 대한 예의와 공감이 깔려 있습니다.

"웃음이 깔려 있는데 거기서 슬픔이 나와야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은 근현대가 혼재한 혼란기였습니다. 일제침탈과 내전에 피폐해진 경제,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생존이 최우선인 시대였죠.

고인의 개그철학은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가볍고 파편적인 웃음이 아니라 관객의 삶을 '풍자'하며 웃음으로 승화하되, '해학'을 통해 그들 아픔에 진정 '공감'하는 것.

고인의 철학은 1980~1990년대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로 이어집니다. 고(故) 이주일 선생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비롯해 '네로25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동작그만' '코미디 모의국회' 등등. 수많은 개그코너는 사회문제와 권력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이른바 '사이다'를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8월.

인기 개그맨 유상무씨가 세운 광고기획사 '상무기획'이 'ST기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난 24일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이 회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작년부터 SNS를 통해 화제가 됐고 이번 채용공고도 유머를 십분 가미했는데요. 문제는 전혀 웃기지 않을 뿐더러 보는 사람 혈압 올라가는 소리만 들렸다는 겁니다.

대놓고 '사축(社畜)'을 양성하겠다는 패기에 누리꾼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자 회사 계정 담당자는 '그럼 꺼지삼'이라는 댓글로 응수했죠. 분노에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ST기획은 뒤늦게 공식사과 했지만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극심한 취업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소모품 취급당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애환을 '꺼지라'며 폄훼한 것은 개그도, 위트도 아니죠.

"웃음이 깔려 있는데 거기서 슬픔이 나와야 한다"는 고인의 발언이 겹치며 ST기획의 채용공고 논란은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오늘도 하루하루 허들 넘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 세상을 떠난 원로 코미디언의 소박한 철학이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다시금 밝은 빛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