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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원 그림자…경영판단의 원칙, 롯데수사 발목잡나?

비자금 조성 연관성 뺀 손실 수사, 엄벌론 한계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8.29 08: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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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자살로 검찰 수사 전개 일정과 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롯데그룹 임원 중 상당수가 고인의 장례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사람'에 대한 수사에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물적 증거'를 통한 혐의 입증과 검토에 주력하는 한편, 사람을 불러 조사하는 문제를 뒤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망 외에도, 이 같은 시일 문제 외에도 혐의 입증 자체에 애로가 커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인의 그룹 내 위상 등으로 볼 때 의미있는 혐의 입증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검찰은 검찰은 롯데케미칼을 통한 해외 원료 수입 과정과 롯데쇼핑의 중국사업 실패 과정 등을 면밀히 캘 것으로 전망됐다. 비자금 조성에 이 요소들이 악용됐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여기에 롯데건설 300억 비자금의 정책본부 유입 의혹 등도 추가됐다.

이런 비자금 조성과 오너 일가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명쾌히 입증해 내는 데에는 그룹 심장에 해당하는 총괄본부 인사들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일본과 한국 양국에 걸쳐 있어 면밀히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롯데 특성상 당국이 비자금의 조성과 용처에 물적 증거만으로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이 2015년 초까지 모든 결정을 내렸다'는 취지로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우선 신 총괄회장이 고령인 데다 건강이 좋지 않다. 법원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 관련 판결을 통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의 유서에 따르면, 또 그 뜻에 대동소이한 진술 태도로 정책본부 여러 인사들이 강하게 저항한다면 고령의 신 총괄회장에 사실상 거의 모든 책임이 돌아가야 되므로, 현재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신동빈 회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난관에 봉착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부친과 형(신동주씨)에 맞서는 양상인 신 회장으로서는 이처럼 대부분의 문제가 부친 시대의 적폐로 인정되고, 탈세 문제 등도 신 총괄회장측으로 책임 소재가 인정되면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검찰이 '비자금'이라는 이슈에 집착하지 않고 기업 수사의 여러 측면 중 하나인 배임과 횡령 등에 의한 경영권 전횡 문제를 밝힘으로써 신 회장을 겨냥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바로 '경영판단의 원칙'이 새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회사 임원 등이 성실하게 관리자의 임무를 다해 판단과 경영을 집행했다면 권한 내에 있는 특정 행위로 기업에 손해를 가져오더라도 외형상 배임에 해당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원칙을 받아들여 법률 규정을 두거나, 판례상 이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는 관행이 확립돼 있지 않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무조건 엄벌을 주장하는 역차별 논리에 제동을 거는 방어적 수단으로는 사용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임이 그 적용상의 모호성으로 인해 검찰권 남용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적절한 양형을 고려하는 것도 일종의 변형된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가 경영판단의 원칙을 절충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관점에 따라서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했지만 손해 회복에 힘쓴 것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확정된 사례도 넓은 범위에서 비슷한 사안으로 넣기도 한다.

다시 롯데의 경우로 돌아와서, 극히 최근까지도 그런 신 총괄회장이 모든 것을 지시했다는 논리를 검찰이 깨지 못한다면, 신동빈 시스템과 비자금 문제를 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은 상당히 곤란한 방파제로 부각될 수 있다.

최근 한 검찰 간부는 비자금 수사만이 기업 수사의 본령은 아니라고 발언했다. 다른 배임과 횡령 사건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롯데쇼핑의 중국사업 실패 과정 등에 배임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 부친에게 상당 부분 잘못을 떠넘긴 뒤 신 회장이 경영판단의 원칙까지 보강 논리로 사용한다면, 비자금 열쇠를 쥐지 못한 경우의 검찰로서는 공격력에 제약을 받을 수있다.

'비자금 그 외의 배임'으로 운동장 크기가 줄어드는 경우의 검찰 수사는 그래서 어렵다는 지적이다. 홀연히 세상을 등진 '비자금 키맨'이 여러 겹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