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6일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향년 69세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검찰의 롯데 수사에 새삼 관심이 모아진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2인자로 불리는 인물로,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신동빈 회장을 보필해와 수사에 상당히 중요한 키맨으로 지목돼왔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운영 총괄기관이자 신 회장의 복심으로 꼽히는 정책본부의 수장으로서 그간 정책본부 산하 운영-지원-비서실 등 핵심 업무를 두루 챙겨왔다.
즉 이 부회장은 가신 3인방으로 세간에서 함께 회자되던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등에 비해서도 비중이 상당히 높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는 이런 상황에서 상당히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리쿠르트 사건 닮은 측근 자살, 최악의 사태 방지?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그룹 계열사 간 부당 거래와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배임·횡령 혐의, 롯데건설의 300억원대 비자금 조성 경위 등을 집중 추궁해 그간의 퍼즐을 완성하고 이 성과를 징검다리 삼아 롯데그룹 오너 일가쪽으로까지 칼날을 겨눌 것으로 예측돼왔다.
물론 이 부회장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확보된 정황과 자료, 앞으로 보강될 증거 등을 바탕으로 각종 단순한 배임이나 횡령 건을 입증하는 데에는 법리상 큰 차질이 생긴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비자금 상황이다. 검찰은 현재 오너 일가 비자금 입증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고위층이 롯데 사건 전반에 대해 기자들에게 "(비자금 저주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대기업 수사의 전형이 아니다" "비자금 외에 다른 배임·횡령 사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이 주목된다. 여론의 선정적 초점 맞추기에 대한 관전 포인트 제시일 수도 있으나, 잘 풀이지 않는 부분에 너무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불편하고 곤혹스럽다는 내심의 토로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극단적인 선택을 두고, 1989년 일본 다케시타 정권의 붕괴를 불러온 리쿠르트 사건, 그리고 이 사건에서 일어난 핵심 키맨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리쿠르트사의 에조에 히로마사 회장이 1980년대 중반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미공개 주식을 정부의 고위 각료와 여권 실력자들에게 대량으로 제공한 뒤 시세 조작을 통해 거액의 이익을 안겨주고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다.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총리의 금고 담당으로 알려진 아오키 이헤이 비서가 자살해 버렸다는 점 그리고 이후 진행 경과에서 롯데에 대한 극단적인 충성 선택을 한 이 부회장 케이스의 기시감을 느낄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다케시타 총리는 스스로 사퇴했다. 이후 이 사건으로 응집된 반발심리가 자민당 장기집권 붕괴로까지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다케시타 총리는 사퇴했을 뿐 구속을 면했다.
키맨이 사라지는 경우의 입증 부담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과거 대북 송금 사건을 봐도,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자살로 현대 측 주요 인사들이나 정치권 인물들이 대부분 책임이나 결정 과정에 대한 입증 문제를 고인에게 떠넘겼다는 지적이 있었다.
◆록히드 사건은 핵심 정보로 난관 돌파, 한국 검찰도 가능할까
한편 또 다른 초대형비리 사건인 록히드 사건에서도 거물의 측근이 자살을 택한 적이 있다.
1976년 록히드 사건은 훗날 터진 한국의 율곡비리와 흡사한 방산 관련 비리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당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자민당 내 주요 계파를 여전히 쥐고 흔들면서 현직 총리 교체를 시도할 정도의 살아있는 권력자였다. 그러나 일본 검찰은 다나카 전 총리를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다나카 전 총리의 개인비서 겸 운전사로 실제 돈을 운반했던 가사하라 마사노리씨가 자살하기는 했지만, 검찰 수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 것. 이 경우는 리쿠르트 사건의 측근 자살 당시와 이런 다른 점이 있었다.
록히드 사건은 미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있는 데다, 증거 인멸도 상당히 이뤄져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당시 높았다. 일본 검찰에서는 오히려 정치권의 직접적인 압력보다도 미국에서 증거가 제대로 넘어오지 못할 경우를 더 걱정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실제로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뇌물을 받은) 정부 고관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상대국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냉전 국면에서 미국이 일본의 정국 혼란을 바라지 않았던 속내를 반영한다. 즉 자민당 질서를 통째로 흔들지 말라는 미국 측 의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결국 미 증권거래위원회가 쥔 자료가 일본에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수사 외에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다는 일본 검찰 최고위층의 약속과 함께, 미국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고위 검사의 경험을 살려 전 록히드사의 코치언 사장에 대한 미국법원에서의 심문을 성사시키는 등 의지와 실력을 함께 과시함으로써 미국 측의 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의 노력과 자료 획득이 있다면 키맨의 자살과 진술 확보 실패 정도로는 수사 전반을 막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롯데 문제 특히 비자금 이슈는 록히드 사건과도 닮은 부분이 많다.
◆일본 사법공조 부진에 키맨 증발까지 검찰 수사 난항
특히 일본과의 관련 부분이 난제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검찰은 그간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자산 거래 과정에서 부외 자금을 조성했고, 이 과정에 정책본부가 깊숙하게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진행된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 모자이크를 맞춰본 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롯데 비자금은 비자금의 조성과 그 사용이 실제로 오너 일가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번에 롯데건설 300억 비자금 건 등이 부각되고 있지만, 과거 롯데건설 세무조사가 사실상 막혔던 점을 들어 걱정하는 시각이 있다.
롯데건설이 세무조사를 받았던 건 지난 2010년 말로, 당시 특별 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투입됐지만, 988억원을 추징하는 데 그치고 이를 비자금 사건으로 본격화하지는 못했다.
롯데의 심장인 정책본부로 수상한 자금이 들어간 점까지는 입증했지만, 이른바 인건비 논란 등으로 용처 입증에 실패했기 때문. 이후에 CJ그룹 비자금 사건에서도 부각된 바 있지만, 자금 조성만으로 이를 오너에게 횡령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법리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검찰은 비자금 수사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과 한국 양쪽에 걸친 롯데 상황은 비단 롯데케미칼 사건에서 일본 롯데물산 보증 문제를 들여다보는 데에만 차질을 주는 게 아니다. 매번 수사 공조를 이끌어 내야 할 필요가 닥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자금 규명 건에서 일본 당국은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현재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이 부회장의 선택은 리쿠르트 사건의 비장함과 함께 록히드 사건의 반면교사를 충실히 융합해 낸 안타까운, 그러나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키맨의 증발로 인한 수사 방해의 극대화는 물론, 해외 당국과의 사법공조가 빠르게 진척되지 않는 데 쐐기까지 박으면서 롯데맨들의 의지를 입증해 냈기 때문이다. 록히드 사건 이상의 비상한 능력과 의지를 과시할 숙제를 한국 검찰에 던지고 떠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