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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포퓰리즘이라는 낙인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이사장 기자  2016.08.26 10: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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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포퓰리즘(populism)'이 고생이 많다. 서울시가 현금으로 지급하는 청년수당 덕분이다. 정부와 여당은 청년수당이 사용처의 조건과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청년들에게 취업수당이라는 이름으로 현금을 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청년수당과는 철학과 내용이 다르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이 청년실업 정책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업이라고 하고, 정부․여당은 청년실업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 한다. 

무상급식 이슈 이후로 다시 한 번 포퓰리즘 논쟁이 시작됐다. 대선도 앞두고 있으니 논쟁은 전쟁이 될 듯하다. 

포퓰리즘. 정책의 현실성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인기주의, 대중영합주의에 기댄 정치행태를 말한다. 무상급식이 한몫해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국민 다수는 '복지'를 떠올린다. 

복지하는 사람들은 좀 억울하지만, 이미 복지는 포퓰리즘의 대명사다. 그렇게 '낙인(烙印)' 찍혔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자. 절대왕정 시대가 아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시대다. 태생적으로 일정부분의 포퓰리즘은 불가피하고 어느 나라 어느 정권, 진영도 예외가 없다. 

미국의 샌더스와 트럼프, 필리핀의 두테르테와 터키의 에르도안, 일본의 아베까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대변하는 계층이 누구냐에 다름이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포퓰리즘에 기대지 않고 성공한 정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포퓰리즘에는 여러 콘텐츠가 있다. 유독 복지가 선봉에 서서 매를 맞아 그렇지, 사실은 경제도 안보도 지역도 특정 시기·계층에는 일종의 포퓰리즘 콘텐츠로 쓰여 왔다. 

사정이 이렇다고 문자 그대로의 포퓰리즘 정책이 문제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너무 쉽게 찍는 경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은 왜, 상대방이나 특정 정책에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을까? 물론 자기 관점에서 나름의 근거와 이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쉽고 빠르게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정치권의 프레이밍(Framing) 전략이 숨어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행동경제학을 개척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먼(D. Kahneman) 교수가 언급한 '프레이밍 효과'는 '같은 문제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판단과 선택이 달라진다'는 개념이다. 

정치권에서 프레임 전략의 효과성은 입증됐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는 경제와 안보프레임을 주도해 왔고 최근 2번의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는 여당이 내부 분열에 빠져 있는 사이 야당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빌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의 슬로건을 벤치마킹했다. 국민이 원하는 경제 프레임을 선점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다. 

정치와 선거에서 프레이밍 전략은 효과적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어떤 정책에 대해 간단히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사람들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깊이 따지기 전에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쉽게 대입해 버린다. 

많은 언론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특정 정치권이나 당국자의 이러한 프레이밍 전략에 따른 표현과 주장을 확대․재생산한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새롭고 중요한 정책 의제에 대해서도, 다수 언론은 기존 자사의 논조에 맞는 근거와 주장만을 내세는 경우가 많다. 

깊이 있고 균형 잡힌 분석과 비판을 하는 언론도, 그러한 정보를 원하는 국민도 찾기는 쉽지 않다. 행동경제학에서 입증했듯이, 사실 우리들 자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자신에게 이미 구축된 관점과 외부로부터 수동적으로 입력되는 언어 표현에 따라 쉽게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어떤 정책에 대한 내용적, 실질적 토론의 기회는 상실되고 국민 여론은 쉽게 이분화 돼 갈등만 심화된다. 

결국 정책의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청년실업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당장 소비가능 인구가 줄어 경제 활력의 발목을 잡는다. 직업이 없고 경제력이 없으니 당연히 결혼은 늦어지고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내니 저출산 문제는 악화된다. 

젊은 경제활동 인구 없이는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의 노후를 뒷받침할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의 고갈 시점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의 기로에 서있다. 어떠한 정책이든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쉽게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찍거나 진영 논리로 프레임을 씌울 일이 아니다. 

대신 그 자리에 진정으로 국민만을 생각하는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스스로가 '협치'의 약속을 했던 20대 국회가 시작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그 때의 약속과 협치 정신을 되새겨 볼 때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