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배 기자 기자 2016.08.25 18:05:07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현대산업개발 1탄 태동과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랑을 겪으며 척박해진 불모의 땅에 희망이라는 깃발을 꽂고 국가의 재건과 민족의 부흥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기업이 바로 '현대'다. 현대는 기업의 이익에 앞서 국가의 번영을, 물질적 만족에 우선해 정식적 가치에 의미를 뒀다.
"올바른 뜻을 갖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신중을 기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예기치 못한 수많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결코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내 삶의 체험에서 얻은 신념이다."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신념은 현대그룹을 관통하는 기업정신으로 뿌리내렸고, 진취적 기상,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도전의식, 불같은 열정으로 위기와 시련을 극복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도시개발·한라건설 모태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창립한 한국도시개발과 1977년 창립한 한라건설을 모태로 한다.
1976년 현대건설 주택사업부가 독립해 창립한 한국도시개발은 현대그룹 내 주택건설을 전담하며 현대아파트를 공급해온 주택전문 건설사다.
앞서 1960년대 초 현대건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아파트라 할 수 있는 마포아파트 공사를 비롯해 한남동 외인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건립했으며, 1970년대 초 서빙고 아파트를 건설하며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를 대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주택의 심각한 부족현상을 깊이 인식, 국민의 주거생활 안정과 국내 조거문화 발전에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국가발전과 국민복지에 기여하는 기업의 책임을 다하고자 1976년 3월25일 한국도시개발이 설립됐다.
설립 직후 한국도시개발은 한강변 압구정동 일대에 6000여가구의 현대아파트를 건설하며 국내 주택문화에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후 서울 및 수도권은 물론 개척자의 정신으로 다른 기업에 앞서 인구 10만명 중소도시까지 진출해 현대아파트를 건설하고, 1980년대 초반부터는 민간부문 주택건설실적 1위 기업으로 대한민국 아파트 문화 전파에 앞장섰다.
1977년 10월14일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동생 현대양행 정인영 회장이 설립한 한라건설은 1979년 중화학투자조정 과정에서 현대그룹에 편입됐다.
토목공사와 플랜트, 해외사업에 집중하며 대한민국에서 삼천포 화력발전소 등 다수의 발전소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도로, 간척 및 항만사업 등의 토목사업과 다양한 건축공사를 수행했다.
해외사업도 활발히 진행해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잔 시멘트 플랜트 공사를 시작으로 중동과 동남아 지역에 진출해 도로, 건축, 플랜트 등 약 25건의 해외공사를 수행하며 이 부문의 신진기술 및 기법과 경험을 축적했다.
이 같은 해외 건설현장에서 체득한 경험과 기술력 및 시공능력은 향후 현대산업개발이 국내 굴지의 종합건설업체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됐다.
◆명실상부 종합건설업체로 재탄생
1986년 11월29일, 국내 주택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며 주택건설 부문 1위 업체로 성장한 한국도시개발과 국내외에서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관련 분야의 눈부신 기술력을 견인해온 한라건설의 합병으로 '현대산업개발'이 재탄생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출범은 급변하는 국내 건설업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그룹 차원의 효율적인 업무수행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한국도시개발과 한라건설의 합병으로 사업영역이 건설업 전반으로 확대됐으며, 한국도시개발의 아파트 자체사업과 국내외에서 터득한 한라건설의 집적된 기술들이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 명실상부한 종합건설업체로 거듭났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압구정동, 분당 신도시, 인천 부평 등 대단위 단지 건설을 비롯해 빌라, 전원주택, 주상복합에 이르기까지 전국 60개 시·군지역에 1년 평균 1만 세대 이상을 건립했다.
아파트 건설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건축부문에서도 선전해 교육, 의료,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전시관람 및 유통 분야의 건물 건립으로 발을 넓혔다.
또 한라건설 당시 건립했던 삼천포 화력발전소 1, 2호기에 이어 3~6호기, 경부고속철도 시범구간 건설, 고속도로 공사를 비롯해 교량, 지하철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 공사, 화력발전소와 환경설비 등 플랜트공사 등의 사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현대산업개발의 저력과 역량을 입증했다.
현대산업개발로 출범한 이래 1991년까지 연 40~50%의 고속성장을 기록하는 등 그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궤도를 달리며 시장가치 1위 건설업체로 우뚝 섰다.
1996년 10월16일에는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함으로써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돼 건설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는 물론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져 종합건설업체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아졌다.
◆큰 회사에서 좋은 회사로 거듭나다
1999년 현대산업개발은 창사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이했다. '살아있는 한국자동차의 발전사' '포니 정'이라 불리는 고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정몽규 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의 새로운 경영진으로 체제 개편된 것.
그해 8월에는 현대그룹으로부터 완전히 계열 분리해 독자경영체제를 구축, 새로운 가치기업, 혁신기업으로 재도약하는 전기를 맞이했고 10월에는 '21세기 경영이념 및 비전 선포식'을 갖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해왔듯이 앞으로도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건 바른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비록 정상에 서지 못해도 바른 길을 택해 산에 오른다면 그 자체가 올바른 산행이요, 정도를 지켜 올랐다면 하산 또한 당당할 일이다."
고 정세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남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칙을 지키고 항상 바른 길을 걷는 정도(正道)의 정신은 그의 가장 중시한 삶의 목표이자 기업경영의 요체로, 현대산업개발을 관통하는 기업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1월에는 기업이미지 제고의 일환으로 새로운 로고와 심벌마크를 탄생시키고 신 CI 선포식을 개최했으며, 기업슬로건으로 'Think Innovation'을 선포했다.
2001년 3월에는 기존의 '현대아파트'의 브랜드 대신 새 브랜드로 '아이파크'를 채택했다. 이는 현대그룹에서의 완전한 독립과 아파트를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문화를 창출하는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 같은 의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라는 명성의 삼성동 아이파크를 탄생시키며, '아파트의 명가'라는 명성을 발전시키고 주택 40만 가구를 건설하는 신화창조의 바탕이 됐다.
단순한 시공사가 아니라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부동산 개발업체 및 인프라 건설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은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2004년 아이파크사회봉사단을 창설한 데 이어 2005년부터는 포니정 재단을 설립해 각종 장학사업 및 혁신상 시상 등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