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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직 찾아 삼만리' 권이종 ADRF 회장 "교육은 희망"

농부에서 파독광부, 차관급 오르기까지…시발점은 '봉사와 나눔'

김병호 기자 기자  2016.08.25 15: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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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항상 공유하며,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인 동물,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로 통칭되는 현 인류다. 특히 이러한 사회에서 베풀고 나누는 삶은 고달프지만,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꼽히는 주제다.

"아이들의 꿈에 희망을 모아주세요". '베푼다'는 수직적인 관계를 '나눈다'라는 수평적인 관계로 새롭게 풀이하고 있는 권이종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ADRF) 회장을 만나 천직이라는 ADRF와 그의 열정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 회장은 영화 국제시장 파독광부 주인공(황정민)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파독광부, 독일 아헨사범대까지…열정 담아

권이종 ADRF 회장은 올해 76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집필활동, 봉사활동, 아동 교육 등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일견에도 그의 눈빛과 단정한 외모에선 연배를 의심하게 하는 건장함과 곧은 신념이 묻어난다.

그는 1940년대에서 50년대 과도기적인 시대적 배경과 함께 교육이라는 혜택을 받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 전북 장수군 지리산 자락 아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농부 출신이다. 당시 교육은 국내 지방가정에서 의무교육인 초등학교가 다였으며, 이마저도 학업대신 가정 일을 택하는 상황이 다반사였다.

이때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환경은 여의치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라는 꿈을 키웠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러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린 나이 집을 박차고 전주로 나와 39살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신문배달부터 시작해 건설현장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익사이팅 자체다.

그는 배고파 물을 마시며 힘들었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감상에 젖었다. 아울러 "전라북도 학생 적십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자원봉사 최고의 학생이였다"며 "스스로 밥 해서 먹고 빨래하고, 아르바이트에 공부까지 해야 하는 일상. 이러한 없는 시간 중에 전라북도 적십자사 봉사활동, 농촌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까지 서슴지 않고 뛰었다"고 회상했다.

없는 돈이지만, 알바 비를 모아 꽃을 사고 이를 학교 교단에 심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먼지 일어나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골목길을 쓸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진정한 봉사와 나눔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돈이 없어 대학대신 군대를 선택하게 되고, 전역 후에 건설현장을 뛰기도 했으며 결국, 독일 파독 광부 모집에 지원해, 일생의 변곡점을 다시 한 번 맞게 된다.

독일 파독광부 모집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광부 8000명, 간호사 12000명 총 2만명이 독일 파독으로 근로 파견을 나간 것을 말한다. 이는 월남전 파병, 중동 노동자 파견 등과 같다고 평가된다. 

파독 광부들의 이야기는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지하 4㎞를 내려가는 극한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는 3년 동안 공부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으며, 주변의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 속에 독일 아헨 사범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1999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 독일사범대학교 박사가 됐다. 그때부터 그는 교육에 대한 열정을 학생들에게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권이종 회장은 한국 교원대학교를 창립멤버로 연수원장에 이어 차관급인 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6년 정년퇴임해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열정과 평생 나눔의 삶은 그를 영화 국제시장 롤모델로 귀범이 됐으며, 현재 ADRF 회장으로 국내외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진행하고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인도네시아 몽골 등 13개국 희망교실 운영

ADRF는 1994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전쟁난민 구호활동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태동한 비영리 민간단체다.

특히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물림되는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HOPE=EDUCATION'이라는 슬로건 아래 빈공아동들을 위한 학교 교육과 인성교육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을 통한 아이들의 꿈을 돕는다는 것, 이들은 이를 통해 변화된 환경을 꿈꾸고 있다. 현재 ADRF는 13개 국가, 20개 희망교실을 운용하고 있으며, 학교가 없으면 학교를 지어주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학교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 교육에 힘쓰고 있다.  

교육이라는 봉사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학교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동남아의 경우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열악한 환경이라는 이유로 학업이라는 선택 대신 일상에서 생계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ADRF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지만 이를 극복해가며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설립된 학교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나라마다 현지상황에 맞게 적용시켜 교육시키고 있다.  

권이종 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며, 소외당하고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이를 이겨내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본적인 환경이라는 것은 교육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하고 윤택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DRF는 후진국 아이들에게 기초교육을 하고 자기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후원 규모는 정기적으로 일대일 결연을 맺은 800명의 후원자와 정기적 기부 2500여명 등을 포함해 총 4500명 정도다. 금액규모는 각 국가별로 다르지만, 매년 11억원에서 12억원 정도이며, 기업후원과 코이카 기금 규모가 가장 크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ADRF 사업의 경우 각 국가당 매달 400에서 800만원 정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코이카에서 매년 3억원 정도가 지원되고 있다"며 "나라마다 특징이 다르며, 평균적으로 매달 30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 후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최근 ADRF가 많이 알려지면서 한국증권금융 꿈나무재단에서는 매년 평균 1억원씩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를 통해 지난해 몽골에 컴퓨터 교육시설을 설립했으며, 올해는 캄보디아에도 ICT교육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다년도 사업으로 가구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무역으로 버려진 팔레트(물품 적재 도구)를 재가공해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 형태를 띠고 있다. 단순이 말하면 현지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또한 취업시켜 수요를 창출하는 지속가능형 사업의 하나다.

여기에서도 ADRF는 전반적인 고용을 위한 교육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동화책 번역 봉사 활동, 다문화가정 아동교육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권 회장은 "극단적으로 구걸하던 나라에서 이제는 나눌 수 있는 나라로 바꼈다"며 "어려움이라는 것은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우며, 우리도 어렵다는 생각은 항상 편협한 틀을 만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현재 ADRF는 올해 인도네시아와 몽골에 직업학교를 창설하며 봉사활동의 터를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부잣집 아이들이 아닌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목공 등 기술과 컴퓨터를 교육하면서 새로운 교육봉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해당국가와 연계해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네팔에 이어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다.

권 회장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봉사일을 진행함에 있어 여럿에게 알리고 함께하고 싶지만, 기회도 많지 않을뿐더러 규모가 큰 단체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행사들도 많다"며 "작지만 알찬 협·단체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