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7부 능선'을 넘은 롯데 비자금 윤곽은?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 향배에 관심이 모아진다.
24일 검찰 고위급 인사가 지난 6월부터 이어진 롯데그룹 수사에 대한 평가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조만간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번 발언은 롯데의 심장격인 정책본부 임원 등 신동빈 회장 핵심 측근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는 풀이다.
검찰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언론 분석과 수사 상황에 대한 여론 환기를 위해 치밀한 계산 끝에 발언 시점과 수위를 계산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계산 가능성이 완전히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특히 수사의 가장 큰 줄기로 꼽혀온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배임 등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안팎의 기대치가 다르고, 이와 관련 수사 부담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비자금이 아닌 다른 사건이라 해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는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롯데홈쇼핑 방송인허가 과정 의혹 △신격호 총괄회장의 6000억원대 탈세 지시 논란 △오너 일가의 부동산 관련 부당거래 등 여러 줄기로 나눠 진행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 중 백미는 그룹 최상위층의 비자금 존재 가능성과 흑막에 대한 완전 규명 여부라는 의견이 많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검찰은 계열사 사장을 비롯해 주요 임직원들의 줄 소환도 감행하는 강수를 뒀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의 가장 큰 줄기로 꼽힌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성과를 빨리 내놓지 못했다.
특히 이번에 검찰 간부가 "비자금이 아닌 다른 사건이라 해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하기도 해 시선을 끈다. 그는 "(대규모 비자금의 풀(pool)이 발견되는 것은) 반드시 대기업 수사의 전형은 아니다"라며 "대주주의 회사운영 과정에서의 전횡, 기업운영에서의 일탈·탈법 등을 전반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중에서 탈세나 배임이 나와 수사를 하고 있고 일부 횡령 혐의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경영상 무리수를 둬 회사에 부담을 주고 손실을 끼치는 것이 배임이고 이렇게 조성된 돈을 횡령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재벌 수사에서 사실 비자금은 가장 공분을 사는 요소, 사회정의 차원에서 관심과 성원을 크게 받는 그 자체다. 그럼에도 그외의 부분에 해당하는 횡령이나 배임에 자꾸 시선을 주라고 설득하는 양상이다.
다만 검찰이 비자금 수사에서 이른바 출구전략을 구사하려 이런 수사 상황에 대한 의미 정의를 하고 나선 것으로 단언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손을 떼거나, 수위 조절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 이 발언이 나오기 불과 얼마 전에 롯데건설 300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과 이에 대한 수사 박차 소식이 흘러나오는 등 비자금 정조준 의욕이 여전히 감지된 바 있다.
문제는 비자금 규명이 쉽지 않을 경우, 검찰이 다른 수사에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비자금을 조성, 정책본부로 이것이 흘러들어갔다는 롯데건설 주변 의혹을 살펴 보자. 과거에도 롯데건설은 세무조사를 통해 자금흐름 전반이 당국의 검토를 받은 바 있다. 지난 2010년 10월 벌어진 롯데건설 세무조사는 특별 전담반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이 나섰다. 이때 세무조사를 거쳐 롯데건설에는 약 800억원대 추징금이 부과됐다.
조사 4국은 일반적인 탈세 조사 창구가 아니라 그룹 오너 비자금 의혹 등을 중점 점검하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국세청은 당시 세무조사에서 롯데건설로부터 정책본부로 흘러들어간 자금 흐름에 주목, 집중 조사했다는 전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성과가 마땅치 않았다.
◆CJ 비자금 악몽 재현? 롯데 측 인건비 논리 등 방패도 추가
거액의 자금이 수년간 정책본부에 '인건비' 형태로 흘러갔지만, 이에 대한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는 못한 것. 자금의 최종 종착지를 일본 롯데그룹으로 보고 조사를 벌였다는 점은 롯데 오너 일가에 대한 비리 의혹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 점검이 만만찮은 과제였던 셈이다.
이번 300억짜리 건설 비자금 이슈도 이때와 마찬가지 흐름을 보인다면 방향은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곤란한 전례가 없지 않다. 이번에 특별사면된 이재현 CJ그룹 회장 배임 및 횡령 사건이 좋은 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이로 인한 경영판단이론 논쟁 그리고 그 이후의 배임죄 부분에 대한 파기환송, 불치병 환자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중형 선고 등 드라마틱한 요소들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많이 모았지만, 이 사건에서도 비자금 이슈가 존재했다.
이 회장의 횡령 혐의에서 1심과 2심의 결론이 엇갈린 점도 바로 비자금 이슈 때문.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회장의 횡령 혐의는 △㈜CJ의 자금으로 비자금 600억여 원을 조성 △CJ차이나와 CJI의 법인자금 합계 115억여 원을 착복한 두 줄기로 요약 가능하다.
그런데, 검찰은 115억여 원 부분에 대해서는 용처를 생활비와 부동산 구입 경비 등으로 썼다고 판단해 공소사실에 넣는 데 성공했지만, 법인자금 600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용처를 밝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용도를 밝히지 못했어도 비자금을 조성한 그 자체로 횡령죄 처벌이 가능한지 논쟁이 일어났다. 실제로 1·2심의 결론도 갈렸다. 1심 재판부는 600억여 원 전액에 대해 횡령죄를 인정했다. 이 회장이 구체적으로 돈을 어디다 썼는 지는 모르지만, 조성한 자금을 개인자금과 섞어 보관한 점 등을 미뤄볼 때 이미 돈을 빼돌리려는 '영득의사'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 자체를 횡령으로 볼 수는 없고, 검찰이 개인적인 용도로 돈이 사용됐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한 점을 들어 600억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과 이에 따른 파기환송심 처리는 배임죄 액수 특정 건이기 때문에 이런 비자금 조성과 사용 입증에 대한 취지에는 변동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회장의 형량을 덜어내는 데 작용한 비자금 규명과 유죄 인정 여부 논리를 롯데 건에서도 대입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문제를 바라보면 롯데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것이 오너 일가의 사용 가능 범위에 있다는 개연성 정도로는 처벌로 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신 회장의 복심으로까지 평가되는 정책본부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도 이것의 용처에 인건비 논란 등이 따라붙는 상황을 검찰이 어떻게 넘을 수 있냐는 게 오너 일가 비자금 처벌 가능성의 마지막 고리가 된다. 검찰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깰 수 있을 정도로 이를 처리해 낼지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검찰이 괴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적잖이 가닥을 잡은 것 같으면서도 이를 확실히 오너 일가의 비자금으로 쓰였다고 입증하는 완결 작업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면, 이는 단순히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등산 마무리 가능성을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직 아니라고 봐야 한다.
즉 인건비 논란 등으로 롯데 측 방어논리가 작동하는 한 이는 기업의 운영자금 중 비정형적인 형태인 괴자금 논란에 그친다. 그야말로 수상하고 은밀한 용처에 사용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돈인 비자금, 그중에서도 그룹 최상층의 비자금이라고 주인과 사용 내역을 규정짓지 않으면 이는 실패한 등산이 되기 때문.
달리 비유하자면, CJ건은 정화조 위치까지는 특정지었지만 이것을 터뜨리는 데 실패한 것이고, 롯데는 현재 이게 정화조인지 저수지인지 뭔가 액체가 가득한 공간을 찾고 있는 셈이다.
7부 능선에 있다는 발언이 물리적으로 나머지 3할만 더 올라가는 수고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들리지 않고, 가장 어려운 미션이 남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