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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급 인물에 신동빈 친위대 DNA, 롯데 정책본부는?

경영승계 핵심 역할 '가신 3인방' 소환 임박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8.23 15: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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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핵심 가신 3인방을 모두 소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삼 이들의 역할에 관심이 모인다.

검찰은 주중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인 이인원 부회장과 황각규 사장(정책본부 운영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이미 한 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대외협력단장 소진세 사장도 다시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가신 3인방 소환이라는 키워드로 회자되지만, 그룹 핵심인 정책본부로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진 셈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에서 정책본부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도 부각될 전망이다.

정책본부는 다른 재벌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나 전략기획실 등과 비견되는 곳이다. 다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과 순환출자로 그룹을 지배하는 롯데의 특성상 사령탑 역할을 하는 조직이라는 일반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롯데는 반도체 회로기판에 비유될 만큼 복잡한 내부 관계를 가졌고, 한국과 일본 간 셔틀 경영 등 특수한 체제를 오래 유지해왔다. 또 신격호 창업회장이 모든 것을 챙기던 만기친람형 경영을 하던 특수성 때문에 역설적으로 계열사 간 관계는 독립적인 성격을 띠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본부 시대가 개막되면서 본격적으로 각 계열사와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현안을 챙기는 부서 역할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신동빈 회장(당시 부회장)이 2004년 경영관리본부의 본부장이 되면서 이곳을 정책본부로 바꿨고 이를 위시해 점차 그룹 경영 전반의 실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신동인 실각과 이인원 포섭 등 막후 '중요배경'

정책본부의 본격적 가동을 기점으로 롯데는 물갈이를 본격 추진했다. 물론 2002년경부터 원로 경영진들의 퇴진은 계속됐지만 정책본부 출범 이후인 2004년 9월 일본 롯데 공채 1기인 임승남 전 롯데건설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상징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후 2005년 봄에는 그룹 전체 임원 100명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가 이어졌다. 신 회장은 이때부터 자신의 친정 토대를 확실하게 굳히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당시 60대 이상의 임원들이 줄줄이 퇴진했고, 50대 초반의 젊은 임원들이 대거 승진했다는 점이 세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정책본부가 출범할 때 김병일 부본부장(당시 호텔롯데 사장)과 신동인 국제담당(당시 롯데쇼핑 사장) 등 주요 인물들을 데려다 쓴 방식도 신동빈 체제 확립에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김 당시 부본부장은 그룹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해온 소위 경리통이었다. 신 당시 국제담당은 신 회장과 6촌 관계다. 과거 정치자금과 관련해 직접 검찰 수사를 받는 등 그룹 대소사를 책임졌다.

김 당시 부본부장은 2007년 초까지 일한 뒤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정책본부에서 물러났고, 신 당시 국제담당도 이후 회장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실세에서 멀어지는 수순을 밟았다.

이렇게 유능한 실세들의 능력을 흡수하고 또 견제하면서 신동빈 친정 체제를 확고히 하는 무대로 정책본부가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싱크탱크이자 야전사령탑으로 가장 유능한 고위층 인재풀을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점은 신 회장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인원 부회장과 정책본부의 인연이 생긴 2007년 상황도 의미가 크다. 이 부회장은 당초 신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7년 김병일 당시 부본부장 후임으로 발탁해 정책본부에 들어왔다. 2011년 신 회장으로부터 본부장 자리를 물려받는 흐름 속에서 신 회장의 사람으로 돌아섰고, 지금까지도 신 회장의 주요 측근에 자리하고 있다.

김병일-신동인-이인원 등 주요 인물 키워드를 보면 결국 '신격호의 사람'은 정책본부를 무대 삼아 그 다음 시대의 등장에 일정한 기여를 하면서 퇴임 내지 실각하거나 혹은 '신동빈의 사람'으로 색채를 새로 덧칠하는 등 각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2011년 롯데그룹에서 비오너 일가 중 처음으로 부회장에 오른 기록을 세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부자 간 갈등, 형제 간 다툼 상황 이전에 포섭할 수 있었던 무대이자 촉매가 정책본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친위대와 야전 출신 크로스오버 "모든 길은 정책본부로 통한다"

정책본부는 신 회장에게 특히 충성스러운 인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인큐베이터로서의 기능도 떠맡아왔다.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의 경우, 신 회장이 처음 한국에 들어와 호남석유화학에 관여할 때 당시 부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 산하 보직으로 신 회장을 따라간다. 2004년 정책본부 체제 마련과 그 다음까지 계속 신 회장의 주요 참모로 일하고 있다. 롯데쇼핑 사장으로서의 역할론 못지않게 정책본부 운영실장이라는 보직이 그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로 활용된다. 정책본부가 피부처럼 황 실장을 덮고 있는 셈.

롯데그룹 수사 국면에서 비자금 의혹 규명 부분의 키맨으로 꼽힌 또 다른 인물도 정책본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롯데그룹의 첫 사장급 인사가 채정병 롯데카드 사장인데, 그는 신 회장이 정책본부를 꾸린 이래 2014년 롯데카드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정책본부 지원실장을 맡으며 전무, 부사장을 거쳐 사장까지 올라섰다.

소 단장의 정책본부 입성 역시 핵심급 인사 이후 더 크게 쓰기 위한 절차로 볼 수 있다. '이인원이 키운 인물'이자 강한 추진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인물로 많이 얘기되지만, 소 단장과 신 회장 간 인연고리가 본격 강화된 계기를 빼면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거 신 회장이 백화점 등 전통의 유통 키워드와 함께 슈퍼마켓 영역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일 때 핵심적인 뒷받침을 한 인물이 바로 소 단장이었던 것.

이런 흐름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정책본부는 자신의 사람이 아닌 고위층 인재의 능력을 흡수하는 기반으로 시작해 그 중요성이 계속 짙어졌다고 볼 수 있다. 중요인물을 새롭게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이고, 아예 처음부터 자기 사람을 기르는 등 폭넓은 활용도를 부여받아온 것이다.

따라서 롯데와 오너 일가, 비자금 문제의 수사 방향은 정책본부 수사 성패에 따라 방향이 확실히 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본부와 연관을 맺었던 인사들을 어느 선까지 조사하고 진술을 받아내느냐에 따라 롯데 수사가 신격호 시대에 대한 정리에 방점이 찍힐지, 신동빈 체제라는 현재 진행형 상황에 대한 단죄로 이어질지 그 성격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본부 앞에서 롯데 이슈가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