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민사소송은 적정, 공평, 신속, 경제의 원칙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민사소송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원칙을 마련했는데 그중 하나가 변론주의다.
변론주의란 소송자료, 즉 사실과 증거의 수집 및 제출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법원은 당사자가 제출한 소송자료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형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는 적용되지 아니하는 변론주의원칙은 때론 상대방의 방어권 행사 기회를 충분히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변론주의를 이루는 내용은 일견 가혹한 면을 담고 있다.
변론주의는 주요사실의 주장책임, 자백의 구속력, 증거제출책임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 중 증거제출책임은 당사자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다가온다. 증거제출책임이란 증거의 제출책임이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에 법원이 이에 직권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이야기 한다.
따라서 당사자는 주장하는 바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제출해야만 하고,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라는 간단한 판단으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요컨대 당사자가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혹은 소송까지 비화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증거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최근 필자의 사무실에 찾아온 의뢰인 A씨는 사기와 협박, 공갈 등 복합적인 피해를 입고 가해자를 고소해 법원의 심판을 받아보길 원했다.
민사소송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형사사건에도 증거는 필요하다. 그런데 가해자의 공갈과 협박에 못 이겨 그동안 나눈 카카오톡 대화나 문자전송내역, 사진, 서신 등을 모두 삭제하거나 불태워버렸다.
형사소송도 마찬가지지만 증거가 없으면 주장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다행히 형사소송의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증거가 수집되기 때문에 민사소송 보다는 입증에 관한 부담이 덜하다.
그런데 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카카오톡 대화의 경우 2일이 경과한 내용은 서버에서 삭제돼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되고, 일부 통신사의 경우 법원의 통화내역 조회에도 회신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따라서 민사소송의 경우 증거의 수집이 이전에 비해 현저히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증거를 확보해야하는 필요성이 이전보다 훨씬 간절해진 것이다.
로펌을 찾는 의뢰인들은 대부분 소송을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변호사보다 더 많은 소송경험을 갖고 있는 의뢰인들도 있으나 이들은 매우 독특한 경우이다. 소송을 처음 수행하는 의뢰인들은 변호사가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요구하게 되면 몹시 당황하게 된다.
위 의뢰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모은 재산을 늘그막에 모두 빼앗겨버렸음에도 순진하게 모든 증거를 완벽하게 본인 손으로 없애버린 것이다.
"전화를 녹취해도 되나요?" 의뢰인이 묻는다. 당연히 녹취부터 해야 한다. 당사자간의 통화내용은 동의 없이 녹취해도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직까지 판례의 입장이다. 분쟁이 예상된다면 무조건 녹취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만 대화의 당사자라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제3조에서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으나 당사자는 타인이 아니므로 가능하다는 취지다.
통화 녹취록은 다른 직접증거들 즉, 처분문서 등에 비해 증거가치는 떨어질 수 있으나 소송까지 진행하게 됐다면 이미 다른 직접증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적극적으로 녹취를 활용해야한다. 민사소송에서 주장만 있고 입증이 없다면 판결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정리될 것이다.
"당사자는 ~라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라고.
임동권 법무법인 금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