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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 소송사기 정조준, 창업주 대신 '살아있는 심장 동빈' 잡아라

선박왕 권혁 선례 보듯 고의성 입증이 문제…檢, 자신감에 초조함 겹친 듯

임혜현 기자 기자  2016.08.16 16: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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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롯데케미칼이 롯데그룹 비리 의혹 수사 전반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주요 전장터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롯데그룹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16일 허 사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제3자뇌물교부, 배임수재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와중에 소송사기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소송사기죄라는 죄목이 따로 있지는 않다. 일반적인 사기의 방법으로 소송이 활용되는 것을 이렇게 부를 따름이다.

대법원 판례는 소송사기를 '법원을 기망해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고 이를 근거로 상대방으로부터 재물, 또는 재산상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소송사기로 일반 사기를 범할 수도 있고, 탈세 등 다른 죄를 지을 때 방법으로 소송사기를 일으킬 수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소송사기가 여러 죄가 함께 결합된 복잡한 사건에서 꼭 본체에 해당한다고 볼 것도 아니다.

이 이슈가 부각되면서, 롯데케미칼 더 나아가 롯데그룹 수사 전반에 신격호 총괄회장-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 전반에 대한 도덕성 논란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악질적이라는 느낌을 줌으로써 검찰로서는 기선 제압 효과를 거둘 것으로도 보인다.

판례 '소송 방식 이용한 사기' 입증 쉽지 않지만…

하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 다분히 사기성 짙은 기업 운영을 한 집단으로 롯데 오너 일가를 몰아세우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석하기에 충분치 않다.

우선 뒷돈을 챙긴 혐의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된 바 있어, 도덕성 문제를 덧칠할 필요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더욱이 신격호발 탈세 지시 논란 역시 불거진 바 있다. 6000억원대의 거액의 탈세 혐의가 신 총괄회장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렇게 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허위 회계자료 등을 근거로 세금 환급 소송을 벌여 법인세와 가산세 등 약 270억여원을 부당하게 돌려받았다는 롯데케미칼 소송사기 이슈는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미 검찰은 이 같은 소송사기를 지시한 혐의로 지난 11일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부터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피곤한 길을 택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소송사기의 경우 입증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왜 이런 수순을 착착 밟아나가고 있는 것일까?

소송사기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데, 입증의 문제 즉 고의성 부분에 대한 검토가 관건이다.

특히나 롯데케미칼 건은 소송사기와 세금 이슈가 결합된 복합 형태로 일반적인 소송사기보다도 입증에 까다로움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지난 초봄 나온 '선박왕' 권혁씨 사건 판결을 인상깊게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적지 않을 것이다. 세금 문제는 소송으로 가더라도 납세 의무 존재 여부 등을 놓고 지루하고 기술적인 공방을 벌이게 마련이다. 이 고비를 넘는다 치더라도 소송사기(에 해당하는 조세포탈범죄)까지 옭아매려면 고의성 증명이 갖춰져야 한다.

선박왕 권혁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형사 처분하려면 조세회피를 넘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를 감행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이런 태도가 대법원에서도 기본적으로 유지됐다. 결국 선박왕 승리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책임 소재가 대거 줄어들었다.

바꾸어 말하면 롯데케미칼 탈세 건에 검찰이 강한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은 고의성 입증을 통한 소송, 즉 부정한 행위로 소송을 활용했다는 부분에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회계법인이 반대했지만 롯데케미칼 측이 소송을 강행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알려져 있다.

월급쟁이 사장이 결정할 일 아니다 '밑그림'에 자신감?

허 사장은 2008년부터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이사와 KP케미칼 대표를 겸직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 사장에 오른 인물이다. 호남석유화학이 KP케미칼을 인수한 뒤 사명을 바꿔 지금의 롯데케미칼이 됐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위상은 앞서 구속된 기 전 사장(2004년부터 2007년까지 KP케미칼 부사장, 사장을 지내다 롯데물산으로 옮김)에 못지 않다.

롯데케미칼이 KP케미칼을 인수할 당시 있던 장부상 고정자산(1512억원가량)을 근거로 소송이 이뤄진 상황에서, 장부에 기재된 고정자산은 KP케미칼이 분식회계를 통해 만들어낸 것(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산이었다는 것)이 소송'사기'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들 두 인물이 모든 걸 꾸며낸 최종 책임자냐는 점이다. 순전히 방어적 측면에서 택한 소송도 아니고, 기술적 방법에 의해 진행된 탈세도 아닌 소송이라는 지극히 적극적 방식을 통해 고려된 사기라는 점에서 두 인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까지 연결되는 '고리'가 되어줄 것으로 이 '강한 추정'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호남석유화학은 금융권 경험이 두드러지던 신 회장이 1990년 이래 경영자 수업을 사실상 본격적으로 받은 곳이다. 또 허 사장 역시 신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이런 고의적인 소송 제기와 탈세를 오너 일가 지시 없이는 그릴 수 없다는 밑그림이 인정된다면, 현재보다 확고히 강한 속도와 강도로 롯데 수사를 추진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당초 롯데그룹 오너 일가 이슈는 비자금 조성 등이 거론되면서 관심이 쏠렸으나 기대치만큼은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앞서 거론된 6000억 탈세 논란 역시 '신격호 시대'에 기본 몸통이 있고 복잡한 구조도를 감안해 생각하면, 우리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하기에는 '일본 기업에서 이뤄진 문제'라고 볼 부분이 다분하다는 난감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 이슈는 '살아있는 권력'에 깊은 상처를 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검찰이 눈길을 줄 만하다. 화학과 M&A 등을 통해 롯데 역사의 2.0을 열어갈 뜻을 내비쳐온 '신동빈 롯데호'를 공격하기에 롯데케미칼 소송사기처럼 신선한 방법도 드물 것이다. 신 회장 연결 문제란 창업주의 6000억 탈세 지시 같은 '지나간 노래'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다만 앞으로가 관건이라는 우려섞인 시각이 없을 수 없다. 쉽지 않은 이슈에 집중하는 단초로는 우선 회계법인의 반대와 전반적인 롯데케미칼 인수와 신 회장의 각별함으로 충분하다. 

물론 강한 추정의 문제에 최대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입히느냐는 과제가 저절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검찰이 초조한 만큼 자신감있게 공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뒷심 발휘 여부에 시선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