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8.16 10:59:36
[프라임경제] 사람은 모이면 언제고 헤어지게 마련이고(會者定離) 헤어진 사람은 또다시 만나게 마련입니다(去者必反). 하지만 반갑게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바로 근로고용관계인데요. 회사가 정리(會社整理)해고를 잘못한 경우 노동자가 꿋꿋하게 돌아온 거자필반 사례를 모아보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극복한 사례도 함께 다룹니다. 관련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제가 운영하는 을 회사는 해외 건설현장에서 중장비를 운영하는 일을 합니다. 뭔가 규모가 큰 일로 보이지만, 사실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형 건설업체의 일을 돕는 회사입니다. 장비도 저희 것이고, 사람도 저희 사람이지만 사실 눈치 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장에는 대형 건설업체의 직접 고용 직원 외에도 소속이 다른 사람들이 여럿 일합니다. 하지만 가장 힘이 센 정도를 넘어 사실상 지휘자가 건설사라는 점에는 관련 업무를 보는 회사나 근무자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더욱이 경기가 좋지 않아 이런 상황은 더 하죠. 국내 건설 현장이 불경기로 시원찮고 외국에 공사 참여 건을 따낼 기회는 더더욱 많이 줄었습니다. 제한된 일감을 둘러싸고 운영업체끼리 피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중동 S국에 그룹사 소속인 갑 건설이 건물을 짓는 건에 저희가 수주를 받은 건 그래서 정말 감지덕지였지요. 저희 회사에서는 건설 현장에 쓸 대형기계를 실어 보내고, 기사들도 출국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사 중에 곤조를 부리고 다른 기사들에게까지 선동을 하는 스타일의 말썽쟁이가 하나 있었던 것이죠. 더욱이 일반 크레인도 아니고, 좀 특이한 종류인 매니토워크를 맡는 기사라 더 다루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장 사람을 갈아치우지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A 기사가 스스로 제일 잘 아는 거죠. 더욱이 갑 건설이 한국에서 하던 대로 시방서(공사계획을 잡는 계획서 같은 것. 일의 순서 등을 종합적으로 짠 것)보다 철근을 좀 덜 넣어서 올리려고 시도하다 초장에 현지 당국에 딱 걸리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어쨌든 했던 일 뜯고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현장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됐죠. 미리 정해진 공기에 차질이 생기면 곤란하니, 당초 계획보다 연장 근무도 늘었다고 현장 직원들이 알려왔습니다. 문제는 그야말로 불경기에 비용 아까자고 철근 빼먹으려던 회사가 현장 수당을 잘 챙겨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었죠. 그냥 적당히 조금씩 '이래라 저래라 좀 더 해라' 그렇게 더 시키는 거죠. 문제는 이런 갑 건설의 갑질에 A 기사가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다는 것이었죠. 여러 회사에서 들어간 기사들이 수당 문제로 민감해 하고 도저히 못 하겠다고 주저앉자, 갑 건설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공구리(콘크리트) 치는 단순인력도 아니고 기사들이니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울 수도 없는 걸 뻔히 알고 이러면 되냐는 것이죠. 연락이 여의치 않은 해외 사정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도 카카오톡으로 그만 두네 마네 하니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도저히 못하겠네, 여기 나온 사람들 다 같은 심정이네, 이번에 현장에 같이 나온 다른 회사 기사들도 그만 둔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 기사 A, B, C까지 그냥 다다음 달 초까지 그만 두려 하네…이런 소리만 날려보내는 A 기사가 정말 괘씸했습니다. 사실상 이 복잡한 모든 상황의 배후조종자로 우리 소속 A 기사가 의심받으면서 저희 회사의 입장도 무척 난처해졌거든요. 결국 갑 건설 현장을 맡고 있는 오너집안 먼 친척 과장에게 자초지종 내용을 전달하고, 매니토워크를 굴릴 수 있는 다른 인력을 다음 달 말까지 S 나라에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다다음 달 초까진 그만 두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원하는 대로 정리해 버리겠다. 다음 달 말까지만 일 시키려 한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너무 뭐라고 하지 말라'고 이심전심의 대화를 시도한 셈이죠. 당사자 A 기사도 자기 생각보다 일이 꼬인 걸 직감했는지, "다음 달 말까지는 원청에서 떨어지는 일 책임지고 시마이(마무리)해줬으면 한다"고 메신저로 문자메시지를 남긴 저에게 큰 반항은 없었습니다. 갑 건설에서도 OK를 했고, 중간에 기사들 대표를 불러다 그달치부터 당장 수당을 좀 집어주는 걸로 다독여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그 선에서 봐 주기로 한 거죠. 그래서 한달여가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아, 중간에 기계 고장으로 우리 회사 직원 D 부장이 S 나라에 들어갔다 왔는데요, 정말 괘씸해서 A 기사한테는 가타부타 말도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의논했던 날짜에도 현지에 교체 인력으로 입국한 E 기사와 바통터치를 하고 A 기사는 귀국을 잘 했고요. 그런데 A 기사, 새삼 반년쯤 지난 지금 해고를 제대로 한 게 아니라고 복직신청 딴지를 겁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 중앙2015부해628 사례를 참조해 변형·재구성한 사례 |
이 회사 사장님이 중간에 끼여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골치 아픈 사람이 지나가던 제3자거나 피해자가 아닌 다름 아닌 '사장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을 같지 않은 을, 사장님 같지 않은 사장님 등이 우리 노동 현실에서는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차량이나 건설기계 등에서는 '지입'이라고 해서 자기가 기계를 소유하고 일감을 받아서 움직이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고 있지요. 사실상 큰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근로자 개인 혹은 작은 회사가 어엿한 사장으로서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사건 같은 작은 회사가 일감을 따내 자기 기계를 보내고 자기가 기사들을 뽑아 보내는 경우는 그래서 중간에 끼여 까맣게 속이 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또 이 회사 사장님이 대기업 갑 회사에 쩔쩔 매면서 의논을 해서 처리하는 태도가 현실에서는 상식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회사와의 거래 관계에서 자기 직원을 보낸 것이라는 기본 틀이 모든 상황의 기본공식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 사건 속 기사를 부당해고 피해자로 인정, 구제하기로 한 것에는 해고의 방법(서명 방식으로 기간을 준수해서)이 잘못됐다는 점을 거론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접 사의를 밝히고 수리하는 게 원칙인데 카카오톡으로 사표를 내고 회사도 알았다며 수리하는 이 모양새가 말이 되나요?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이렇게 편하게 서로 카카오톡으로 사표를 주고 받는 상황의 이면에는, 사실상의 상전은 '갑 건설 뿐'이라는 잘못된 공감대가 깔려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기 직원을 쓰는 방식에 잘못된 관행이 퍼지고 있다는 점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입니다.
원청이 일감을 주고, 하청에게 일을 시킵니다. 당연히 멀리 현장에 나간 하청 직원은 원청 직원에게 당당히 부당한 문제를 지적하거나, 요구 조거늘 내세우는 등 속된 말로 뻣뻣하게 굴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파견한 직원이 문제를 일으켜서 사실상 갑에게 '찍히면' 곤란하다는 것을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사장부터가 현장에 오가는 대기업 소속 직원들에게 (아무리 직급이 낮아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등 '공기'부터가 다릅니다.
이 사안의 경우도 A 기사가 불평불만 분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할 말을 했다는 점에서는 그를 몰아내거나 할 수 있는 빌미가 되지는 못합니다.
사실상 하청 입장에서 갑의 눈치를 봐서 정리를 한 거죠.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사안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기 직원인데도 '이 사람이 그만 둔다는데요, 어쩔까요?' 식으로 제3자처럼 한걸음 떨어져 대화를 진행하는 태도가 감지됩니다. 아니 좀 달리 볼 수도 있지요. 갑이 갑질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갑질을 대행해 주는(꼴보기 싫은 사람을 잘라주는)' 모습도 보입니다. 결국 문제인물에게 갑이 할 인사조치를 우리가 대신해주는 태도입니다.
이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사안에서 A 기사는 일반 근로자가 아니라 기사라서 목소리를 좀 내는 편이었다는 점이 일반적인 경우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 좀 다루기 까다로운 특별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 기사라서 더 함부로 하기 힘든 사람이었던 것 같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조차도 갑질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회사가 스스로 자기 근로자를 다른 외부 문제(갑을 관계)의 부속품처럼 내다 버리거나 상납해 버린다고 그 책임과 의무가 모두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 둔다" 소리까지 오가게 된 문제의 빌미가 된, 연장된 일에 대한 그 수당을 주기로 합의가 된 순간, A 기사 등 여러 회사에서 온 많은 기사들의 불만은 철회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니 사용자(사장님)로서는 그만 두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아니면 그냥 일을 할 건지, 이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관리자(부장)이 문제의 S 나라 현장까지 들른 상황임에도, A 기사를 불러 명시적인 방법으로 의사 확인을 하는 절차를 생략해 버렸죠.
회사를 운영하려면 힘든 일이나 괴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때로 갑이 자기 직원들을 임의로 괴롭히고 자기 직원인 양 이래라 저래라 묵시적 압력을 주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런 문제를 그냥 포기해 버리고 '파도에 몸을 맡겨 버리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 순간, 일은 더 복잡해지고 모양새는 더 비겁해질 뿐더러 책임은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경제 사정이나 갑을 관계 등 온갖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그냥 나 몰라라 할 게 아니라 팔을 젓는 데까지는 저어야 한다는 점, 그래야 그나마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의 방법이 나올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