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네 살짜리 첫째는 굉장한 자동차광이다. 아주 어릴 때는 그저 바퀴에 집착해 자전거나 유모차, 마트 카트 등에 자주 매달렸지만 어느 정도 자유의지가 강해진 뒤에는 말 그대로 '자동차'에만 관심이 한정됐다.
주말에 아빠와 차로 외출할 때면 아이는 사전행사처럼 시동 꺼진 운전석에 앉아 핸들 돌려보고, 기어 조작하는 흉내를 낸 다음에야 카시트에 앉았다. 그림책도 꼭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내용만 골라 꺼내는 첫째가 별난 것은 아니었다. 호소아빠 역시 '자동차는 남자의 또 다른 자아'라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니까.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TV에 눈을 뜨면서 녀석의 취향은 급격하게 구체화, 실체화됐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디서 구하는지도 눈치 챘다. 남은 것은 엄마의 얇아진 지갑과 최저가 검색 기술정도랄까.
여전히 첫째는 자동차가 나오는 책에 집착하고 단어장을 넘기다가도 자동차 비슷한 게 등장하면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다만 제 눈앞에서 유려하게 움직이며 화려하게 변신까지 하는 정의로운 친구들에 훨씬 더 열광할 뿐이다.
그리고 호소엄마는 아들의 '정의로운 친구들'을 '악마 같은 장난감 나부랭이'라 부른다.
◆시작은 '폴리'와 '로이'였다
뽀로로에 관심 없던 첫째의 태도를 바꾼 시발점은 '폴리'였다. 그 유명한 송씨네 삼둥이를 사로잡은 '로보카폴리'가 호소네에 상륙했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은 브룸스타운은 아이의 유토피아였다.

또한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졌고 교통안전교육시리즈가 따로 제작될 만큼 공익성까지 갖췄으니 부모 처지에서도 좋은 친구였다. 국산인데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과 간판, 표지판이 영어인 것은 그러려니 할 정도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경찰차(폴리), 소방차(로이), 구급차(엠버), 구급헬기(헬리)로 일상 속 위험한 순간에 구조대 역할로 출동해 안전을 수호하는 내용은 사랑스러웠다.
지나가는 순찰차만 봐도 "폴리!"를 외치며 달려드는 아이를 위해 작년에 처음으로 캐릭터의 '다이캐스팅'(금속 주조된 모형)을 사줬다. 구조대 사총사를 모두 가진 아이가 다음으로 고른 것이 '캡(택시)'이었고 이후 사총사의 로봇변신세트까지 사다 날랐음에도 이 정도는 괜찮았다. 호소엄마는 TV에서 '로보카폴리'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직 몰랐으니까.
순식간에 1년이 흐르고 요즘 일상은 이렇다. 어린이집 하원 이후 업무에 남매 돌보기까지 정신없는 호소엄마에게 아들은 느낌표를 다섯 개 정도 붙여 엄마를 호출한다.
"엄마!!!!!"
고무장갑 차림으로 안방에 가보면 첫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이런다. "제트렌 사줘!" 그렇다. 아이는 그 시간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 '헬로카봇 3기'를 시청 중이었다. "무림의 고수 제트렌…." 머릿속에 최저가가 대충 그려지는 스스로가 맘에 안 든다.
◆사주고, 변신시키고…신제품은 계속 나오고!
'TV를 안 보여주면 되잖아' 또는 '사달라는 걸 다 사줘?' 등의 시어머니 같은 지적에는 이미 익숙하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일반론에 기댈 뿐이다. 이럴 때는 이미 갖고 있는 '헬로카봇-스파이 본'과 '애슬론 또봇-알파'로 달랜다.
만화처럼 '정의로운 친구들'이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며 스스로 변신하지는 않는다. 호소엄마 입을 배경음 삼아 완전 수동으로 순식간에 차에서 로봇으로 '만들어준다'.
여기에 해당 캐릭터의 대사도 곁들이면 더 좋다. "나는 세계 최강의 스파이 본! 차탄 오늘은 무슨 음모지?" 또는 "애슬론 알파! 트랜스포메이션! 광자가속!(부아아아아앙)".

친절하게도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은 아이가 하원하고 씻은 뒤 간식까지 먹은 다음 오후 5시부터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교차편성으로 내보낸다. 후배 초보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절대 TV는 틀어주지 말라"다. 다음 벌어질 상황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하니까.
심지어 '악마 같은 장난감 나부랭이'를 낳는 만화지만 호소엄마가 보기에도 재미있다. 솔직히 말하면 '터닝메카드'는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남매 재워놓고 완결까지 몰아서 봤다. 에반과 피닉스, 타나토스와 테로 등등 인기 캐릭터 모형을 사들였지만 조연 캐릭터에도 욕심을 내는 아이와 스토리상 불쌍한 캐릭터에 마음이 가는 호소엄마는 또 쇼핑을 한다.
이 와중에 터닝메카드는 W시리즈로 2기를 편성했고 4기까지 시리즈가 확정했으며 '또봇시리즈'와 '헬로카봇'은 기존 기아·현대자동차 주요 라인업(포니·아반떼·소나타·그랜저·벨로스터·스타랙스 등)을 총출동시키더니 새 모델링을 위해 콘셉카를 대량 방출했다.
당연히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캐릭터 상품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들이 '장난감 라인업'을 미리 세우고 그에 맞춘 스토리라인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은 짚어볼 일이다.
일례로 '헬로카봇'(기아차 후원)의 경우 1기에 등장한 '카봇 에이스'(소방 출동차) '카봇 댄디'(소방 구급차) '카봇 프론(순찰차)' 등이 있음에도 3기에 'K-캅스'라는 이름으로 경찰 운송수단이 세트로 등장했다. 원래 자동차 한 대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게 카봇의 콘셉트였지만 K-캅스와 앞서 등장한 '마이티가드'(소방구조대)는 자동차 4대가 합쳐야 하나의 로봇이 된다.
마치 짠 것처럼 해당 장난감 가격은 3만~4만원대에서 10만원대로 치솟았다. 아이가 경찰차·소방차에 열광하는 부모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이 있다. 30년 묵은 은둔자도 밖으로 뛰쳐나올 만큼 '포켓몬 Go'의 열풍이다. 사회적 현상이 된 포켓몬스터는 1995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 호소엄마는 '카드캡터 사쿠라'(한국명 카드캡터 체리)의 팬이었다. 여성의 취향을 저격하는 클램프(Clamp·일본 4인조 만화 금손)의 작품은 과한 설정으로 비난도 컸지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포켓몬스터를 모으듯 마법사 크로우가 세상에 뿌려 놓은 '크로우카드'를 수집하는 과정은 모바일게임 '포켓몬 Go'의 설정에 대입해도 위화감이 크지 않다. 그런데 이를 '뽀로로' '터닝메카드' '또봇(카봇)' 등에 대입한다면?
미취학아동 취향의 '뽀로로'를 비롯해 다른 캐릭터를 대입해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도로를 거니는 게임을 부모들이 용납하기 어렵다. 동시에 콘텐츠는 있지만 인기 없는 캐릭터의 색깔만 바꿔 '스페셜에디션'으로 내놓는 터닝메카드와 대당 4만원대가 넘는 장난감 공세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변신로봇들에 실수요자가 향후 20년 동안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단순히 장난감에 목매는 아이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당장 현금장사에 치여 시장흐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업계에 화살을 돌리고 싶다. 또한 '한국형 ○○○'라는 이름으로 업계를 압박하는 복지부동의 공무원들까지.
'포켓몬 Go'는 캐릭터의 힘을 바탕으로 증강현실(AR)이라는 기술을 입혀 '현금화'에 성공한 좋은 사례다. 그러나 창의력이 저당 잡힌 우리는 '현금화'를 기대하며 '기술'을 찾고 이에 맞춘 '캐릭터'를 끼워 맞춘다.
그 부작용은 "장난감 사줘" 굴레에 목이 조이는 부모들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