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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시장 개화…정부는 '떠넘기기' 급급

중소기업 위주 국내 VR업체 자구책 마련 시급

임재덕 기자 기자  2016.07.14 1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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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VR(가상현실)시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정부 규제로 국내출시를 미루던 PC기반 VR HMD(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 제조사인 오큘러스와 HTC가 최근 국내시장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

업계에 따르면 오큘러스는 지난주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헤드셋·위치감지 센서·리모컨을 포함한 '오큘러스 리프트'의 전파 인증을 마쳤다. 전파 인증은 전자제품 출시 전 적합성을 인증받는 제도로 통상 제품 출시 3~4주 전에 이뤄진다.

또 HTC는 '바이브'의 국내 전파인증을 준비 중이다. 13일 열린 스마트콘텐츠 VR 전략 콘퍼런스에서 칼 랜 HTC 이사는 "한국 내 HTC 바이브 전파인증을 준비 중"이라며 "한국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사와 접촉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차정훈 한국VR산업협회 기획정책실 팀장은 "기본적으로 오큘러스와 HTC는 자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특히 HTC는 자사 플랫폼에 5000명에 달하는 개발자와 300개 이상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국내 사업이 진행될 경우 위축된 VR 생태계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죽 쒀서 개주는 꼴?" 남의 일이 아닐지도…

하지만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VR을 미래성장동력으로 보고 수백억대 투자를 감행했지만, 어렵게 키운 시장을 해외 거대 자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물론 삼성·LG전자도 VR에 관심을 갖고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발표해왔다. 이들의 주력은 모바일용 VR이다. 이는 PC용 VR보다 시장도 작고 제품 성능도 차이가 크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 관계자는 "삼성·LG전자는 스마트폰 판매량을 얻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VR을 제조한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게임 산업 활성화를 위해 사전등급제를 폐지하고 자체 등급분류제로 변경했다. 업계는 이 때문에 오큘러스와 HTC가 국내시장에 진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의 근거로 과거 오큘러스 담당자의 "자율등급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한국 내 판매시점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발언을 들었다.

사실 자체 등급분류제로 변경된 것은 국내외 모든 VR 업계가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규제가 풀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조건이 하나 붙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전문적으로 전담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춘 업체'여야 한다는 것. 즉,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으로 구성된 국내 VR업계는 제외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업계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 싸움이라는 반응이다. 대안을 하루빨리 제시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 위주의 국내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

VR사업을 시작하려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VR은 여러 가지 산업이 합쳐져 형성된 융복합산업이다. 따라서 심의를 받아야 할 곳이 적게는 2곳부터 많게는 5곳도 넘는다"면서 "이 모든 심의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VR을 시작하려는 자본이 적은 스타트업은 살아남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반면 오큘러스와 HTC와 같은 VR 대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제시한 자율등급제 요건에도 충족할 수 있을뿐더러 여러 산업의 심의를 함께 거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해도 사업상 리스크는 크지 않기 때문.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래부 측은 "논의 중이다. 하지만 사실 정부에서 모든 규제를 풀어줄 수는 없고 지원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관련 협회나 민간단체가 앞장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민간 조직을 구성해 관련 사항을 안내하거나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자체 등급분류제와 관련한 기자의 물음에는 "관련 협회가 요건을 충족한 후 중소·영세 VR업체들의 콘텐츠를 대리 등록해주면 될 일"이라고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미래부는 VR 분야에 민관합동으로 6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이 돈은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에 흘러갈 것이다. 이를 외국자본에 '죽 쒀서 개' 줄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약자(중소기업)가 먹고살 수 있는 정책 마련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