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너, 엄청 돈 많은가 보다."
만년필을 쓴다고 하면 보통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입니다. 물론 필자도 그렇게 말하던 때가 있었죠. 아무래도 만년필이라고 하면 손에 잡기커녕 눈으로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외관에 커다란 황금색 펜촉 같은 걸 떠올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요즘 만년필은 꽤 대중화된 아이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장님들 계약서에 사인할 때나 쓰는' 펜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 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외관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젊은 층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기업 행사나 단체 선물로 중저가 만년필을 주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만년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나만의 펜'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은 ‘잡을 수 없는’ 펜이 되곤 하니까요. 펜을 잡는 모양, 글씨를 쓸 때 펜을 누르는 힘의 세기에 따라 펜촉의 이리듐은 미세하게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마모돼, 내 필기체에 딱 맞는 펜으로 길들여지죠.
또 외적인 특징을 만들기 위해 만년필 바디나 클립에 레이저로 이름이나 좋아하는 문구 등을 새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자도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 가장 좋아하는 펜에 제 이름을 각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현대식 만년필이 만들어진 건 언제일까요? 1884년 뉴욕에서입니다. 세계 최초의 만년필 브랜드 '워터맨'의 창시자 루이스 워터맨의 당시 직업은 보험사로, 보험 서류를 작성하다가 실수로 서명란에 잉크얼룩을 만들어 계약에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착안해 '잉크가 흘러나오지 않는 펜'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강철펜'보다 더 편리해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하죠.
가장 비싼 만년필을 살펴볼까요. 많은 분들이 '몽블랑 아냐?' 하고 생각하실 거 같은데요. 아쉽게도 몽블랑은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고급 만년필의 대표브랜드 몽블랑은 여러 다른 브랜드와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한정판을 만들어왔는데요. '억' 소리나게 비싼 이런 한정판들 중에서도 가장 비싼 만년필은 고급시계 브랜드 반 클리프 아펠과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만년필 '미스터리 마스터피스'입니다. 가격은 무려 73만달러, 주문제작 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2위는 오로라의 1919년 모델 '디아망테'입니다. 만년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만년필 애호가들에게는 유명한 브랜드죠. 대중적이지 않은 만큼 독특한 필기감을 자랑하는 브랜드지만, 이 모델에 있어서는 필기감은 그다지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일년에 단 한 자루만을 생산하는 이 모델은 1919년도부터 생산해 몸통에 1919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았다고 합니다. 가격은 147만달러입니다.
대망의 1위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티발디의 '풀고 녹터누스'입니다. 2197개의 주얼리로 장식했고 그중 917개가 희귀품인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중국 상해의 개인경매에서 800만달러에 판매됐는데요. 2·3위 만년필보다 가격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이 펜이 세상에 단 한 자루뿐이기 때문이죠.

확실히 만년필은 이제 와서는 그리 편한 필기도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잉크를 새로 채울 때마다 손에 다 묻어 엉망진창이 되는 건 물론이고 몇 주 신경을 안 쓰면 그렇게 힘들게 채운 잉크가 다 말라버려 정작 필요할 땐 쓰지 못하는 일도 있죠. 세척은 또 어찌나 불편한지, 몇 번을 흐르는 물에 씻어내도 잉크가 묻어날 때는 '정말 내가 이걸 왜 쓰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고전적인 것에서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을 발견하듯이, 만년필을 쓰면서 지금껏 잊고 있었던 쓰는 즐거움을 깨닫기도 합니다. 아무리 스마트워크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종이와 펜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하죠.
요즘은 시·소설 등 문학작품이나 인문서를 필사하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하는데요. 또 독특한 나만의 글씨체를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캘리그라피 수업 같은 것도 많이 대중화됐죠. 이번 기회에 '나만의 펜'으로 색다른 취미활동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