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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8]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은대 작가 기자  2016.07.12 22: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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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해 3월, 장모님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은지 15년이 지나서였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장모님의 병은 상당히 호전되기도 했었고, 극도로 나빠지기도 했었다.

몸을 움직이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마음 속에는 '내가 곧 죽을 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 가득하다. 만약 암 선고를 받았던 그 날, 장모님이 앞으로 15년을 더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아마 장모님의 생애 마지막 15년의 삶은 크게 달라졌으리라.

며칠 전,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췌장암으로 고생하신 지 8년만이었다. 일가친척을 비롯해 큰아버지를 잘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은 호상이라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물론이고 병 수발을 들던 온 가족들이 너무나 오랜 시간 고생을 했기 때문에 아마 위로의 의미를 담아 호상이라 부르는 듯 했다.

큰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은 직후부터 유난히 짜증을 많이 부리셨다고 한다. 네 형제 중 맏이와 둘째를 아예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셋째와 막내는 당신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했으니 대략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큰아버지라는 분은 아주 성격이 거칠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익기 알고 있었기에 큰 병을 앓으면서 괴팍한 성미가 더 심해졌으리라.

장모님과 큰아버지는 내 가족이기 때문에 죽음이 안타깝고 애절하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 하나 남긴 것도 없고, 누군가 기억해 줄 만한 발자취를 새기지도 못했다.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두 분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참 잘 살았다, 참 행복한 삶이었다'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떠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루게릭병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야구선수 루 게릭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후 관중이 꽉 들어찬 야구장 한 가운데에서 고별연설을 했다.

"오늘 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끝에서' 의 저자 다비드 메나셰는 뇌종양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투병 중에도 교편을 놓지 않았으며, 양쪽 눈의 시력을 잃고 왼쪽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던 다비드 메나셰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어둠이 나의 세계를 집어삼키는데도, 팔의 힘이 점점 약해져 스스로 포크를 들어 식사를 할 수 없게 되는데도, 다리가 나를 배신해 비틀거리는 일이 잦아지는데도, 나는 얼마 안 되는 여생을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바로, 즐겁게 사는 것이다."

장모님과 큰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몇 백억의 돈이 손에 쥐어졌다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근사한 옷을 입고 명예로운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면 행복하게 떠날 수 있었을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간직하게 되는 마음은 아마도 제각각 다를 것이며,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은 오만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삶을 생각하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질적인 부에 집착하거나, 명예나 권력 따위를 좇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후회와 불안으로 눈을 감게 되리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삶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산다는 것이 참 허무한 것이구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을 지우고 싶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다비드 메나셰가 남긴 한 줄의 글귀가 오늘, 내 가슴을 흔든다.

"숨이 멎는 그날까지, 나는 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최고다 내 인생> 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