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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워킹맘 재택근무 반년 "웃으며 울었다"

'쉽고 편하게 일한다' 지레짐작 제발 그만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7.12 1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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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호소아빠와 나 사이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금기어가 있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쁜 말은 "대체 집에서 뭐했느냐"식의 불평이다.

두 번째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한지 반년이 흘렀다. 언젠가 말했듯 호소엄마는 회사 설립 이래 최초의 유부녀이자 출산휴가·육아휴직 1호 신청자였다. 또 사내 유일한 워킹맘(곧 2호가 탄생할 예정)이며 재택근무 중이다.

워킹맘에게 '재택근무'는 굉장히 매력적인 근무환경이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걱정을 덜 수 있고 아이들 역시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에 마음을 놓기 때문이다.

올해 초 남편은 재택근무 확정 소식에 상당히 반가워했다. 그는 호소남매를 돌보면서 동시에 일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겠냐며 만면에 화색을 보였다. 나 역시 첫째는 어린이집에 적응했고 친정어머니가 주중 2~3일은 도와주시기로 한터라 같이 웃었더랬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르는 동안 혼자 울었다. 정확하게는 웃으며 울었다. 아주 펑펑.

◆아기띠 맨 채 엉거주춤 선 채로… "나는 뭐지?"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위장병에 시달릴 만큼 힘들어하자 얼마 전부터 친정어머니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둘째를 돌봐주기로 하셨다. 덕분에 황량하게 가문 아스팔트에 단비를 맞은 것처럼 든든했다.

그런데 지난주 사정이 생겨 친정어머니가 내내 자리를 비우셨다. 하루는 아침 9시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을 시작하려는데 한 줄도 쓰지 못한 채로 2시간이 날아갔다.

당시 내 모습을 묘사하면 울부짖는 16개월 둘째를 아기띠에 들쳐 안고 엉거주춤 선 상태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슬슬 낮잠 잘 때가 됐는데 엄마 품을 놓지 않는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큰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한 꼭지라도 마감이 가능할지 감조차 안 잡혔다.

절망스럽게도 집에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불가능하고, 또 불가능할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계기였다.

재택근무는 나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했다. 직장인 또는 주부의 역할 중 하나만 하라고. 두 마리 토끼는커녕 빈 손가락만 빨 수 있다는 부담감까지 더해 말이다.

그나마 둘째만 돌보면 되는 주중 낮 시간은 좀 나은 편이다. 첫째가 하원하면 그야말로 전쟁터 한 가운데 홀몸으로 떨어져 얼마 남지도 않은 집중력을 탈탈 긁어모아 멀티태스킹에 보태야 했다.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간식 챙겨주고, 도시락 설거지에 알림장 확인을 마치면 두 다리에 달라붙은 호소남매가 놀아달라 아우성이다. 큰 아이 말이 더딘 탓에 TV는 정말 최악의 상황에만 보여주기로 다짐한 터였다. 사이사이 메신저와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마감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오후 7시쯤 저녁을 먹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보려 하지만 뽀르르 따라온 첫째가 책상 옆에 따라 앉는다. 모든 업무가 그렇지만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육아에 구멍 난 업무량을 욕심껏 채우기 위해서 결국 자는 시간을 줄이고 쪼갰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이를 구구절절 하소연할 수도 없고 이해를 구할 수도 없다. 남매는 아직 너무 어리다.

◆재택근무 적응≑성격파탄 야생동물 키우기

흔히 지레짐작으로 재택근무는 쉽고 편하게 일할 것이라 여긴다. 출퇴근에 시달리지 않고 상사나 선배 눈치를 보지도 않으니 '꿀보직'이라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제 때 내놓아야 하는 것은 똑같고 이 때문에 재택근무가 더 고될 수도 있다.

동료들이 사무실과 출입처를 공유하며 서로의 업무 스타일과 고민을 나누는데 비해 재택근무는 결과로만 평가받을 때가 많다.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기획안을 냈고,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들은 모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듯 동료, 선후배와 소원해지면서 자주 의욕상실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 반년 맨땅에 헤딩하듯 경험한 재택근무는 마치 사람 손을 단 한 번도 타지 않은 성질 고약한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것 같았다. 이 '성격파탄의 야생동물'은 자기관리에 대한 의지와 자제력을 먹고 큰다.

재택근무의 기본은 집안에 독립된 업무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업무 중에는 그곳에서 온전히 일에 집중하고 육아나 집안일은 잊어야 한다. 본인이 지치는 것도 문제지만 회사의 일원으로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이비시터 또는 비슷한 역할을 담당할 제3자는 꼭 필요하다. 믿을 수 있는 베이비시터가 있어도 아이와 집에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면 과감히 근처 카페나 도서관을 일터로 삼는 것이 좋다.

일과 육아의 완벽한 병행이 불가능함을 몸소 느낀 만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유혹은 수시로 옆구리를 찔러온다.

특히 온라인 메신저와 스마트폰만이 직장동료들과 '직장인' 신분의 나를 잇는 끈이 됐으며 점점 가늘고 연약해지는 탓에 외로웠다.

어린 남매를 곁에서 돌보면서 웃지만 의욕만큼 따라오지 않는 집중력과 낮아진 성과는 나를 울린다. 이게 지난 반년 동안 '웃으면서 울어야 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