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그룹 품을 벗어날 현대상선의 남은 항로가 안갯속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자회사에서 떨어져 나와 세계 1위 규모의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에 인수합병(M&A)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대응책이 미비하다는 반응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은 오는 1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지난달 3일 결의했던 대주주 지분에 대한 7대 1 무상감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글로벌 △현정은 회장이 가지고 있던 대주주 지분 20.93%는 감자 후 3.64%로 하락하게 된다.
앞서 현대상선은 지난 4월 결손금 보전 및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전체 주식의 7대 1 감자를 통해 자본금을 1조2125억원에서 1732억원으로 감소시킨 바 있다. 당시 등기이사이던 현정은 회장은 지난번 전체주식 감자로 이사 자리에서 사임한 데 이어 이번 대주주 감자를 통해 대주주 자리에서도 내려오게 됐다.
7대 1 대주주 감자가 단행되면 현대상선은 더 이상 현대그룹의 자회사가 아니다. 현대그룹 자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현대상선이 빠지면 현대그룹도 대기업에서 중견그룹으로 위치가 바뀐다. 현대상선의 대주주가 채권단으로 바뀌고 나면 채권단 역시 출자전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전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위해 현대상선에 제시한 조건은 △용선료 협상 △사채권자 집회 △해운동맹 가입 세 가지다. 이중 현대상선은 해운동맹 가입을 제외한 두 가지 조건을 마무리했고 남은 해운동맹 건도 순조롭게 풀리고 있어 채권단도 출자전환을 진행하기로 한 것.
현대상선이 현재 가입돼 있는 해운동맹 'G6'는 다음해 3월 해체된다. 이에 현대상선은 기존 G6동맹사 중 세 곳이 포함된 새로운 동맹 'THE 얼라이언스' 가입을 노렸다. 그러나 이미 한진해운이 가입돼 있어 노선 편중 우려 등 혼란이 오히려 가중됐다.
이에 현대상선은 세계 제1의 해운동맹 '2M'으로 가입 전략을 선회했다. 2M은 규모 제1·2위인 덴마크 머스크사와 스위스 MSC가 결성한 해운동맹으로 동맹사는 단 두 곳이지만 전체 컨테이너선 영업규모의 27%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동맹이다.
현대상선은 2M 가입을 통해 세계1위 해운동맹의 가입사라는 안정적인 위치를 획득하고 반대로 유럽 해운사만으로 구성된 2M은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아시아-미주 노선을 현대상선 영입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일견 윈-윈 전략으로 보이는 현대상선의 2M 가입이 불안한 이유는 2M의 동맹사이자 세계 제1해운사인 머스크 때문이다. 머스크는 끊임없는 공격적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회사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현재 유례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해운업계에서는 외국 해운회사들을 중심으로 M&A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불황 대응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머스크는 그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M&A를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회사다. 이에 머스크사가 현대상선을 2M에 흔쾌히 받아준 데에는 중장기적 인수계획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5일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국적선사를 해외로 팔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어렵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현대상선보다 자율협약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행이 유력해 보이는 가운데 국적선사를 놓칠 수 없다는 의지로 파악된다.
한편, 정부의 지원책 미비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도 등장하고 있다.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해운회사가 자율협약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시 12억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통해 해운사에게 신규 선박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자금 규모가 충분히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적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행동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2억달러는 1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약 10여척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펀드 규모도 더 키우고 집행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