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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또다시 떠오르는 '리디노미네이션'

이윤형 기자 기자  2016.06.28 13: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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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금액단위를 1000대 1로 절하시킨 가격표입니다. 이 같은 표기법이 적용된 메뉴판은 이제는 어딜 가든 흔하게 볼 수 있을 만큼 통용되고 있죠.

표기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이 표기법은 수년전부터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표본이기도 합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두면서 액면단위만을 하향 조정하는 화폐정책인데요. 우리나라의 물가상승과 경제규모 확대 등으로 거래되는 금액의 수치가 높아짐에 따라 계산상의 불편을 해결하고자 지난 2004년부터 수차례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리디노미네이션 도입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다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거래단위의 편의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은 전년 대비 667조2000억원(5.7%) 증가한 1경2359조5000억원으로 추계됐습니다. 또한 한국은행 금융망을 이용한 원화 이체 총금액은 지난 2014년 6경3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죠.

경(京)은 숫자 뒤에 붙는 0의 개수가 16개나 되는 단위인데요. 경 단위로 표기할 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화폐단위는 마지막 리디노미네이션이 있었던 1962년과 같이 높은 단위를 사용하고 있어 거래장부 기재 등에 불편함이 크다는 이유에서 관련 제도 추진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리디노미네이션 도입 시 거래장부 등 기재의 편의성 증대 외에도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을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총 지폐발행잔액(말잔)은 84조3484억69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가운데 5만원권 지폐는 76%인 64조3236억1300만원을 차지하고 있죠.

화폐발행잔액은 한은이 공급한 화폐에서 환수한 돈을 제외하고 시중에 남은 금액을 말하는데요. 64조가 훌쩍 넘는 지폐들이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지하경제에 스며들었다는 얘깁니다.

이 때문에 화폐단위를 변경해 새로운 통화를 발행시킴으로써 지하에 묻힌 돈이 양성화될 수 있다는 점은 리디노미네이션의 가장 큰 장점으로도 꼽힙니다. 

이 같은 장점과 달리 리디노미네이션 도입 시 발생하는 리스크도 존재하는데요. 바로 우수리 절상에 따른 과소비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입니다.

화폐가치는 그대로일지라도 0의 개수가 줄어든다면 심리적으로 물건이 저렴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예를 들어 1000대 1로 리디노미네이션이 될 경우 990원, 9990원 하는 상품은 각각 0.99원, 9.99원에 팔려야 하지만 실제로는 1원, 10원에 팔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이밖에도 기존 금융기관 전산시스템을 바꾸는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과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혼란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정책의 단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현재, 한국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만큼 과소비와 물가상승 등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은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제도 도입의 '적기'라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현재 국내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실질 국내총생산(GDP)가 잠재 GDP 이하로 성장 중이며 이에 따라 물가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는 연평균 1.1% 상승하면서 한국은행이 목표로 내세운 2.5~3.5%의 하한선에도 접근하지 못했죠.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2018년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낮췄지만, 올해 들어서도 1.0% 상승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로 끝난 것은 도입 시 발생하는 장단점의 평행성, 즉 비용에 따른 편익 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진단되는데요.

디플레이션 기조에 따라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인 과소비, 물가상승의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라고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