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37개월과 15개월을 넘긴 호소남매가 언젠가부터 엄마쟁탈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압도적인 덩치를 앞세운 첫째가 엄마 품을 독차지했다면 15㎏에 육박할 만큼 몸을 키운 둘째의 전투능력이 최근 만만치 않아졌다.
주로 멱살 잡기와 온몸 누르기를 구사하며 투덕거리는 남매를 말리려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십자가형'을 받아들여야 한다. 양팔에 남매를 한 명씩 껴안고 굳어 있는 바람에 만성적인 어깨 결림과 근육통이 직업병으로 따라온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아빠와 잠드는 게 어색할 지경까지 끼고 산 내 죄니까.

엄마도 사람이기에 한 주를 마무리할쯤이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해진다. 보통 2주일에 한 번꼴로 3~4시간 외출을 하는데 대부분 영화를 보거나 먹으러 다니고 그동안 남편이 아이들을 돌본다.
평일에는 야근이나 취재원 미팅이 잦은지라 남편이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주말 이틀 정도다. 군소리 없이 외출할 시간을 벌어주는 게 고마운 일이다. 다만 내 처지에서는 호소남매를 포함해 '아이 셋'을 집에 남겨둔 것 같은 심정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기우가 현실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일주일치 에너지를 충전해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즉시 배터리 방전이 시작된다.
사방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장난감에 그림책, 더러워진 옷가지는 기본이고 싱크대에 그득하게 쌓인 설거지감과 간식 포장지가 굴러다니는 식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뭘 하고 놀았는지 꼬질꼬질한 얼굴로 새까만 때를 마치 목걸이처럼 두른 호소남매가 이산가족 상봉하듯 달려와 안긴다.
앞뒤로 코알라마냥 아이들을 매달고 안방을 들여다보면 언제 틀어줬는지 모를 변신로봇 만화가 무한 재생되는 와중 남편은 자고 있다. 언제 꺼냈는지 장롱 밑바닥에 개놓았던 겨울용 극세사 이불을 공처럼 말아 껴안고서.
불과 네 시간 비웠을 뿐인데 집도, 사람도 전쟁난민 꼴이니 장거리 외출은 없는 셈 치는 게 속이 편했다. 아빠육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많은 기사와 칼럼과 대담이 쏟아지는 시대, 매체마다 넘쳐나는 '슈퍼맨'과 애들을 맡기면 그야말로 '보고만 있는' 남편을 비교하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상당한 기간에 걸쳐 남편에게 불만을 터트리며 싸우고 따지기를 반복하다보니 천천히 문제의 시작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핵심은 우리 부부가 정의한 '육아'의 범위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는 '아이를 쾌적한 환경에서 방치하지 않고 돌보기'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청소, 빨래, 목욕, 식사준비 등을 해야 하고 아이의 놀이상대도 해주는 등 총체적 노동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남편의 육아는 '애 보기'의 의미가 더 크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다치거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살림살이는 논외로 친다.
놀라운 것은 나와 남편의 관점 차이가 각각 친정과 시댁의 그것과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시작하면 대화가 다시 논쟁 또는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일단 원인을 찾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비슷한 고민에 대해 전문가들은 흔히 이런 처방을 내린다. 요약하면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되 부탁의 의미를 담아서 전달하라는 것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조언들 중에서 남편을 움직이는 것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호소아빠의 경우 말로만 부탁하면 중간에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 외출하기 전 쪽지에 할 일 2~3가지를 적어둘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집이 놀랍도록 깨끗하거나 남매가 눈에 띄게 뽀얀 행색으로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드물다. 그저 호소아빠가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움직여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다.
'1가정 1슈퍼맨'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이도 잘 키우고 살림도 잘하며 사회적으로 인정까지 받는 '슈퍼맨'은 차라리 유니콘에 비유될 만큼 드물 것이다.
남편과 나는 처음 부모가 돼 그 역할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사실 애정보다 '전우애'를 다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내가 서툴고 힘든 만큼 그 역시 서툴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왔음을 최근에 깨달았다.
언젠가 호소아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우리 집 '아이들' 중에서 가장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말을 잘 듣는다. 그것만으로도 칭찬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