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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티몬의 6월, 조선어학회의 6월

백유진 기자 기자  2016.06.23 08: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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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6월은 나라의 독립과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이달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에서 목숨을 던진 호국영령은 물론,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희생을 되돌아봐야 할 시기인데요.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소셜커머스업체가 식민지배 속에서 어렵게 지켜낸 '한글'을 파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죠.

지난달부터 티켓몬스터(이하 티몬)는 자사 몬스터 캐릭터를 앞세운 '몬소리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몬소리'는 티몬 캐릭터 '티모니' 언어로 소비자들이 힘들고 지칠 때 무심코 내뱉는 웅얼거림을 말합니다. 고객의 웅얼거림을 티모니들이 알아듣고 불만을 해결하겠다는 의도에서 기획됐죠.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티몬은 이를 그대로 한글로 적어 광고 카피까지 만들어냈죠. 쓴돈이 얼만데 선물하나 안주다니'라는 말을 '쓴도니얼만뒝셩물안츄다뉢'으로, '살때는 쉬운데 환불할 땐 어렵네'라는 말을 '살뛔는쉬운데환불할퉨어렶'이라고 표기하는 식입니다. 

소리에 이어 자막마저 이해가 안돼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는데요. 광고적인 면에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명백한 '한글파괴'라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티몬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부분 좋은 반응을 보였다"며 "공식 채널로 접수된 고객 불만 사항 또한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는데요. 

티몬의 반응에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함흥지방재판소의 판결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언어는 민족의식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언어교육 또한 민족운동의 형태라는 점을 지적, 처벌이 불가피함을 밝힌 거죠. 

실제로 조선어학회 사건은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우리말 사전 편찬에 힘썼던 정태진을 비롯해 장지영 등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총 33명이 검거됐고, 일부 옥사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며 큰 발자취를 남긴 이 조선어학회의 뒤에는 한 경제인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세권은 개량한옥을 많이 지어 돈을 번 인물이지만, 후에 일제의 통치에 내심 반발해 물산장려운동은 물론 조선어학회 지원에 큰돈을 내놓습니다.

공장 직원 한 달 급여가 20원 남짓이던 시절에 4000원을 선뜻 학회의 보금자리인 회관 건립비용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지원을 했던 그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여파로 큰 고초를 치렀죠. 

사실 일제로서도 이 학회 사건에 정식으로 그를 엮어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누명을 씌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경제사범이라는 명목으로 동대문경찰서에 체포구금됐고, 결국 전 재산을 일제에 강탈당하게 됐죠.

1943년 6월의 일입니다. 

티몬 몬소리 캠페인이 이렇게 숨막히는 일제 탄압 속에서도 한글을 지켜낸 선조들의 노력과 정신을 무력화하는 마케팅으로 읽히는 이유죠. 누군가는 목숨을 통해 지켜낸 우리 글을 후손인 우리들이 망가뜨려도 괜찮을까요.

특히 우리 기업인들의 수준이 민족얼을 지키는 운동에 기여하던 높은 정신세계에서 '문제가 없는,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팅' 운운하는 수준으로 이동한 점은 안타깝습니다. 6월을 맞아 두 대조적인 사안을 기억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