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혜자스럽다'의 의미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배우 김혜자의 이름을 건 편의점 도시락에서 비롯돼 '최고의 가성비'를 뜻하는 신조어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가맹사업을 시작한 쥬씨(대표 윤석제)는 테이크아웃 음료의 '혜자'로 통했다. 1리터에 육박하는 대용량 과일주스가 단돈 2800원. 지난 4월 매장 수 500개를 돌파하며 비슷한 콘셉트인 '빽다방'을 압도했고 점심시간 전후면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다.
그런데 최근 안팎에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달 초 한국소비자연맹에 의해 용량 눈속임을 한 것이 드러나면서부터다. '1리터 주스'라는 홍보와 달리 실제 양은 100~400㎖나 적어 식품위생법상 오차 기준을 10배나 초과했다.

쥬씨는 이를 즉각 인정하고 시정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약 일주일 뒤 잦아들던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 17일경 온라인과 SNS를 통해 '논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사과주스를 1000원에 제공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나돌았는데 사과를 빙자한 마케팅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특히 처음 사과문의 주체가 '쥬씨 주식회사'였던 것에 비해 문제의 포스터는 윤석제 대표 이름으로 제작돼 '장사꾼 마인드'에 거부감을 가진 소비자를 더 자극했다.
하지만 사건에는 반전이 있었다. 이 포스터가 회사의 공식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000원 사과주스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출시 계획이 없다.
쥬씨 관계자에 따르면 '1000원 사과주스'는 용량 논란 이후 내부적으로 준비한 여러 대응책 중 하나였지만 역효과를 걱정하는 의견이 많아 결제단계에서 폐기됐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 시안이 외부에 '유출'되는 바람에 곤경에 빠졌다는 얘기다.
관련 업무에는 3명의 본사 담당자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해당 부서원 또는 디자인 외주작업 중 흘러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유출 당사자가 좋은 마음으로 이를 온라인에 흘렸을 가능성은 낮은 듯하다.
걱정되는 것은 쥬씨가 아직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용량 표기 논란부터 내부 자료 유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실패한 내부관리다.
회사는 용량 표기와 관련해 "지난해 말 잘못을 인지하고 각 지점에 '1리터' 표기를 'XL'로 시정하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 문제가 된 것은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개설된 매장(약 300개)들로 이후 신규 가맹점은 표기를 바로잡았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소비자의 신고를 접수해 조사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맹본사는 무려 반년 전에 문제를 알고도 오해의 소지가 명백한 가맹점들을 방치한 셈이다. 잘못된 용량 표기를 '일부 가맹점'의 문제로 떠넘기는 듯 했던 초기 대응도 아쉽다.
내부 자료의 유출은 더 심각하다. 이번에는 '폐기된' 디자인 시안이 흘러나간 것에 그쳤지만 다음에는 신제품 출시나 특별 프로모션 정보가 빠져나갈 수도 있다. 최근 망고식스를 비롯해 대형 체인이 경쟁에 가세한 상황에서 내부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무엇보다 고객들의 눈초리가 전 같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쥬씨는 공식홈페이지에 고객센터를 마련하지 않은 대신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쥬씨 매장을 찾은 이들 상당수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인지 설탕인지 모를 싱거운 주스, 불친절한 점원, 사용한 믹서를 씻지 않고 방치하는 등 비위생적인 매장환경 등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한 문장으로 일축하면 '초심을 잃었다'는 평가다.
2010년 스물여섯 살의 윤석제 대표가 건국대학교 앞에 처음 매장을 낸 것이 '쥬씨'의 탄생이었다. 4년 만에 세 곳의 직영점을 관리하며 터를 다진 그가 본격적으로 가맹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어떤 각오를 다졌을까?
흔히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한다. 값어치가 낮은 것은 질도 나쁘다는 뜻의 관용어로 지금은 '싸구려'를 비하하는 말이지만 원래는 후한 인심과 배려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옛날 주막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에게 주모가 일일이 보따리 하나씩을 건넸는데 한 손님이'싼 게 무엇이냐'고 묻자 주모가 '비지떡을 쌌으니 요기하라'고 했다는 게 '싼 게 비지떡'의 유래다.
비지떡은 일면식 없는 남일지라도 여행길에 굶지 말라는 후덕한 인심의 표현인 것이다. 불과 1년 사이 너무 빨리 달려온 쥬씨가 '싼 게 비지떡'의 원래 의미를 다시 찾기를 바란다. 모든 문제는 남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