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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좋은 사과의 다섯 가지 원칙

쥬씨 '사과주스'가 욕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6.20 16: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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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누구나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지만 '미안해요'하며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과'는 인간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사하는 가장 진화적인 기술로 꼽힌다.

진심어린 사과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영국 소매업체 막스 앤 스펜서(Marks&Spencer·이하 M&S)는 '사과의 좋은 예'로 자주 등장한다.

2009년 M&S가 DD컵 이상 빅사이즈 브라 가격을 2파운드씩 올리기로 결정하자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몇 분 사이 1만명 넘게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M&A 측은 발 빠르게 사과 광고를 게재해 진화에 나섰다.

여론을 뒤집은 것은 한 줄의 카피였다. "We boobed(우리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유방'과 '어처구니없는 실수'라는 중의적 단어 'boob'를 재치있게 활용한 업체는 △인상안 철회 △차액 환불 △25% 기간 할인 등 구체적인 보상 계획도 함께 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언론은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회사'라며 긍정적 기사를 쏟아냈다. 이틀 만에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3만명의 새 친구가 생겼고 시장점유율은 상승곡선을 탔다.

국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몇몇 기업들이 막스 앤 스펜서의 '중의적' 표현을 벤치마킹하려 애쓴 사례가 있다. 다만 기대와 달리 결과물이 하찮았을 뿐이다.

싸고 양 많은 생과일주스로 인기를 끈 쥬씨는 최근 눈속임 용량표시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 9일 한 지상파 뉴스에 언급되며 논란이 일자 회사는 곧바로 사과하며 일단락된 듯 보였다. 문제는 일주일 만인 지난 17일 윤석제 대표 명의로 올라온 '사과문 2탄'이었다.

'사과'라는 동음이의어를 재치있게 살리고 싶었던 윤 대표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대중은 박리다매를 노린 '장사꾼'의 말장난 또는 노이즈마케팅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사과를 빙자한 1000원짜리 호객행위에 넘어갈 만큼 고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년 전 웅진식품의 간판 제품이던 '하늘보리' 역시 어설픈 동음이의 화법으로 쓴맛을 봤다. 버스정류장 옥외 광고로 내건 '날은 더워죽겠는데 남친은 차가 없네'라는 문구 때문이다. 대중은 '차가 없다→버스(대중교통)를 타야한다→덥다→짜증(→시원한 음료?)'의 연상 작용을 거쳤다.

남녀 불문 성차별적 표현을 문제 삼자 웅진식품은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의 의도부터 설명했다. "문구에 '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음료(tea)를 의미한다"는 것. 그러나 궁색한 해명은 분노를 키웠다. 문제의 광고는 모두 철거됐고 웅진식품은 공식 사과문으로 재차 여론을 달래야 했다.

'사과는 고양이(CAT)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C는 콘텐츠(contents), A는 태도(attitude), T는 타이밍(timing·시점)을 의미하는데 충실한 내용을 담아 진정성이 느껴지는 태도로 적절한 시기에 해야 진정한 사과라는 뜻이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올바른 사과 방법에는 크게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다만' '하지만' 등은 절대 금물

'미안해'라는 말 뒤에 이런 표현이 붙으면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나 변명으로 변질된다. 일례로 2014년 12월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한항공의 사과문은 오히려 조현아 전 부사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드립니다. (하지만)당시 항공기는 탑승교로부터 10m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등의 문구를 공식 사과문에 담았다.

◆'무엇이' 미안한지 밝혀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 지난 4월 김상현 홈플러스 사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사과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취임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그의 태도는 책임회피와 스스로 왜 사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인상을 풍겼다.

◆너의 잘못임을 인정하라

'내가 잘못했다'고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유감표명과 책임인정은 필수다. 이를 무시하면 가해자는 사과했지만 피해자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더 분노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난해 7월 '대장균 떡' 유통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송학식품은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언론에 책임을 돌리는 태도로 뭇매를 맞았다.

◆재발방지, 보상계획은 구체적으로

사건을 일으켰다면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사를 상세하게 표현해야 한다. 말뿐인 사과는 또 다른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올해 4월 이른바 '갑질 매뉴얼'과 운전기사 폭행 논란에 휘말린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의 사과문에는 이런 내용이 모호하게 뭉뚱그려져있다.

그는 "물의를 일으켜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도 "관계된 분들께 사과하고 질책과 비판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피해 운전기사에 대한 복직이나 구제 계획은 물론 당사자에게 언제 사과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최적의 타이밍 찾기

너무 오래 시간을 끌다 떠밀리듯 사과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과의 타이밍은 너무 늦어서도, 또 일러서도 안 된다. 사안에 따라 상대방이 분노를 마음껏 표출한 뒤에 '숙성된' 사과를 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단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그중에서도 '총체적 난국'으로 평가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공식 유감표명까지 무려 5년이 걸렸고 언론사에 이메일 형태로 제출한 사과문은 진정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물론 여론 전체가 험악하게 돌아선 것은 자명했다.

사과는 어렵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게 힘든 법이다. 그럼에도 이왕 용기를 냈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남에게 상처와 고통을 떠넘겨 지켜진 자존심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독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