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군납 고춧가루 납품 조건 위반으로 일선 농협과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군납 구조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선 농협 등에 따르면 농산물 군납은 과거 농어민의 소득 안정을 돕고 군부대의 편의를 위해 조변(현지에서 군량을 조달함)을 원칙으로 했었다. 1960년대는 지역의 군부대와 인접한 지역농협 간에 개별적으로 군납 계약을 맺었다(2005년 전국축협노조에서 내놓은 '군 부식 농산물 군납의 올바른 방향에 관한 대책회의 및 투쟁 방향' 보고서).
1970년대 들어 형식적으로 농협중앙회로 일원화했는데 이는 정부가 '예산회계법 시행령 임시특례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군납 시 '수의계약'을 명문화하는 데 따른 부수적 조치로 단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군납은 이같이 농가의 소득창출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계획생산제도를 적용하는 것으로(다른 말로 재배약정이라고도 부름) 운영의 틀을 잡아왔다. 일반적 시장경제원리를 따르지 않는 관행이 뿌리내려온 셈이다.
이후 국방부에서는 군 부식 완제품화와 경쟁입찰 등 선진화를 추진했지만, 군납 농민들의 반발로 일명 '군납파동'이 일어났고, 1990년 7월1일부터 군납 계약의 주체에 다시 지역농협이 등장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조달에 관한 협정'은 원래 군 당국의 의도대로라면 계획생산제도 전면 폐지로 사라져야 했지만, 개정만 거듭(가장 최근 개정은 2009년)될 뿐이었다.
정부 사용 물품을 구매하는 일명 조달 영역에서도 시장 개방을 원칙으로 하자는 이른바 세계무역기구(WTO)의 영향 아래 진행됐지만 군납 계획생산은 비껴갈 수 있었다. 즉 수의계약과 계획생산조달은 우리나라도 가입한 'WTO 조달협정'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 군납 우유를 수의계약함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라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2007년) 등 군과 관련한 식품 구매에서는 수의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협정의 그간 내용과 운영 사정을 살펴보면, 조합과 중앙회를 포괄해 농협(을)으로 통칭하는 등 군납에 나서는 각 지역조합과 조합원 복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데까지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에서는 따로 '군납사업취급준칙'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가장 최근 개정은 2013년).
이 준칙은 중앙회의 군납사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중앙회의 각 사무소와 자회사, 일선 회원조합(즉 지역조합)을 군납사무소 내지 연계사무소로 봐서 전체 틀을 짜고 있다.
군납에 참여하는 지역조합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관리감독을 하고 각종 제재를 가하는 데 분량을 할애하면서 권위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선납금 등 자금지원 등에 대한 규정도 마련돼 있다.
결국 군납이 추구하는 대의를 위해, 중앙회가 계약의 가격 조건 등을 당국과 협의하지만 각종 계약의 실질적 당사자로는 지역농협이 일선 군조직, 급양대 등과 맺도록 하고 중앙회는 참관인(옵저버)으로 역할을 하는 게 현재의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결정의 합리성 등을 위해서는 중앙회가 중심이 돼 군납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일선 농협 조직은 빠지고, 중앙회가 가격 결정부터 계약의 당사자로서 이행 전반에 나서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에 건고추 군납 사건으로 일선의 각 지역농협에까지 배상금 부과가 되는 등 소란이 일면서 그 정당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
즉 건고추는 여타의 주요 군납 농산품 6종과 달리 일선 조합이 계약의 당사자로서 나서지 않고, 아예 중앙회가 직접 납품하는 품목으로 독특함이 있다. 중앙회 중심으로 군납 주체와 관리 문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이 건고추 건처럼 중앙회 가격 협상-중앙회 계약 모델이 다른 영역으로 일반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중앙회조차도 이번에 일선 지역농협에서 순전히 선의로 계약의 조건 중 일부를 다르게 이행하는 것을 감독해 내지 못했을뿐더러, 막상 계약의 불이행 등으로 책임 추궁이 들어오자 이 부분만 아래로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군납 당국에서 과징금, 배상금 등을 일선 농협에 직접 부과하는 것으로 사안이 정리되는 양상이나, 심지어 지역농협은 다행히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사업자'로 지정되는 불이익은 면했다는 식으로 논의가 되는 자체가 난센스인 것이다.
이런 구조는 위의 규정이나 준칙이 일반적으로 예정하는 '중앙회의 계약 조건 협상-각 개별 조합의 계약' 구조일 때나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계약 당사자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중앙회의 수족 역할만 한 건고추 수매 관련 지역조합들이 추궁을 당하는 것까지 이로써 정당화되는지에는 당연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과거에 실질적 계약 당사자인 중앙회가 불량저질고기 납품 배상의 책임 당사자라며 정부가 소송을 제기하고, 판결도 그렇게 나온 적도 있다.
이런 사정과 구조에도 불구하고 '하청업체에 사실상 책임을 전가하는 원청'처럼 중앙회가 민낯을 드러낸 것이 바로 이번 건고추 군납 계약 조건 위배 논란인 셈이다. 이는 중앙회가 군납에서 그간 여러 공로로 기여해오고 중요 역할을 한 점과는 별개로, 실제로 전면적 주인공으로 전부 일처리를 도맡고 나설 때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음을 방증하는 한 예다.
중앙회는 군납 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지역농협은 개별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구상은 중앙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원청-하청의 관계로만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사전에 바로잡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는 군납과 관련한 현재 여러 구조 즉 이른바 협정과 준칙을 일반 계약처럼 투명하고 대등협력관계로 개선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준칙이 중앙회 중심으로 고압적으로 구성된 점은 둘째치고, 협정에 대해서도 외부적 감시나 관찰이 사실상 어려운 채 방치돼 있다. 당장 국방부 등 관계자들도 이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행정규칙 등은 아니고 일반 계약에 해당하는 것이라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해명이다.
이는 행정작용이 아닌 계약 부분이면서도, 막상 보안 등을 이유로 음지에 머물러 온 현재의 군납 관련 시스템의 모순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중앙회가 군납이라는 특수한 계약을 이행하는 데 지역농협과 개별 농민들의 좋은 파트너이기만 할 것이라는 전제가 이번에 무너졌다는 것을 받아들여 군납 개혁의 모든 결론을 중앙회가 주인공이 되는 방식으로만 짜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