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6.16 18:07:08
[프라임경제] 농산물 군납을 둘러싼 농협의 구조적 한계가 고춧가루 문제로 터지면서 시스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일선 조합 간 힘겨루기 끝에 모호하게 봉합돼 운영돼왔지만, 결국 관리 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한때 시스템 선진화를 위해 중앙회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장악할 필요성이 거론돼왔지만 이런 주장이 사실상 허상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으로 여겨지면서 향후 각 지역조합이 지역별로 밀착된 군납 공급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다시 중심축이 이동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농민 위해 고추 건조해줘서 배상금?
문제의 얼개는 이렇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일부 일선 농협이 홍고추 상태로 수매, 건조 업무를 대행한 뒤 건고추로 납품한 사안에 대해 계약 위반을 지적한 바 있다. 방위사업청은 '농가에서 건조한 고추를 농협이 수매·가공해 납품한다'는 군납 계약 조건을 들어 문제를 제기한 것.
하지만 지역농협이 농민 편의를 위해 선의로 처리해준 일에 지나치게 조문에만 얽매인 이른바 축자적 해석을 한 조치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일었고, 이에 방위사업청은 "홍고추 수매 부분은 계약 조건을 위반했으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점 등을 고려하고 권익위원회 등 의견을 반영해 재검토 후 판단하겠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남안동농협 등에 상당한 규모의 배상금이 부과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선 지역농협에서는 '부정당사업자'로 지정돼 군납에서 배제되지 않은 점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으면서 마무리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농민 편의를 위해 대신 말려준 일선 농협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이에 대한 제재가 당연한지 혹은 그런 문제 제기를 자제할 필요가 있는지 외에도 문제가 여럿 잠복해 있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
군 부식 조달을 위한 농산물 군납은 국방부장관과 농협중앙회 회장이 체결하는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조달에 관한 협정'과 농협중앙회가 군납 업무의 세부 관리를 위해 마련한 '군납사업취급준칙'을 기반으로 관리돼왔다.
협정에서는 당국이 농협중앙회와 가격 및 생산량을 협의한다고 선언했다. 방식은 수의계약(입찰 등에 부치지 않고 임의로 계약), 계약물량의 생산을 양대 축으로 농산물의 군납이 시행되는 것이다.
결국 이를 단순화하면 가격과 물량은 당국과 농협중앙회가 가격 등을 정하고, 중앙회가 다시 군납조합인 각 지역농협에 이를 하달, 군의 일선기관과 지역농협이 파트너가 돼 납품요구와 납품이행 등을 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렇게 되면 농협중앙회는 업무의 관리 및 감독에 주력하는 곳, 일명 참관인 역할이어서 계약의 당사자인 각 지역농협이 계약 불이행 등에 따르는 제반 책임을 우선적으로 지는 게 논리상으로 옳다는 의견이 많다. 
문제는 건고추다. 과거부터 국방부-농협 간 협정상 조달되는 계획생산 품목은 7개 주요 농산물을 근간으로 이뤄져 △무 △배추 △마늘 △양파 △오이 △감자 △고축가루용 건고추가 이 7개 주요 농산물에 해당한다.
특히 이들 종목 중에서도 건고추는 중앙회에서 조달하는 품목으로 운영되고 있다.
남안동농협 관계자가 이번 건고추 군납파문과 관련해 "계약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중앙회다. 우리는 갑, 을, 병 중에 병"이라고 설명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여름에 군 관계자가 작성한 한 석사논문(김일구, '대리인 문제로 살펴본 군 보급체계 문제점 개선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에서도 이 건고추의 중앙회 조달 상황이 지적돼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농산물 군납의 얼개를 그려 보고, 그 처리를 이해할 때 고추 문제를 빼고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계약은 각 지역조합(군납조합)이 당사자로 나서지만, 당연히 중앙회와 국방부/방위사업청에서 맺은 내용을 통해 군인 급양을 최상으로 관리하는 게 농산물 군납 수의계약과 계획생산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 급식 복리를 이루지 못할 경우(계약의 불이행)에는 중앙회가 관리를 엄중히 하고 국방부/방위사업청과 함께 각 문제를 일으킨 지역조합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옳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다른 군납 농산물에서 중앙회와 일선 조합 간 관계상 도출할 수 있는 논의이지, 고추처럼 중앙회 조달 품목으로 따로 돼 있는 영역에서도 이렇게 지역농협 위에 군림하고 책임만 폭탄 돌리기로 두는 게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일선 농협 중 하나인 함평나비골농협에서도 "부정당업자 지정은 중앙회나 우리 중 하나만 나오는 것"으로 여기는 등 책임을 당연히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협정상 농가에서 군납업무 수수료조로 조합에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다. "전적으로 계약은 중앙회에서 진행하고 물량 배정만 개별 농협에 한 것"이라는 그의 설명대로 이번 사안은 여타 농산물 군납과는 별개로 지역조합은 '도구'에 불과함을 방증한다.
중앙회 자신이 납품하는 것의 관리책임은 자신이 오롯히 지는 게 원칙이고, 다만 그 세부 내용을 따져 봤을 때 하자담보책임이 일어난다면 이는 민사상 구상 청구를 별개로 한다든지 진행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실질적 계약 당사자인 중앙회가 배상해야" 선례도
때문에 건고추를 조달하는 데 있어 주체인 중앙회가 그 내용 이행 문제를 지적받게 됐다면, 이에 따른 과징금이든 배상액이든 전적으로 계약 주체인 중앙회가 지는 게 옳다는 것이다.
중앙회 자신의 군납 조달 필요성에 의해 하부 납품망의 도구로 동원된 일선 지역농협 스스로가 배상 책임을 직접 부과받거나 또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과거 군에 납품된 저질고기(쇠고기, 돼지고기)가 납품된 사안에 대해 정부는 "비록 군부대와 직접적인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은 각 지역의 단위농협이지만, 단위조합이 육류의 검수와 가공에는 관여하지 않은 만큼 농협중앙회가 실질적인 계약 당사자"라면서 중앙회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배상액 인정 규모가 크게 줄기는 했지만 2010년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이런 논리를 긍정, 배상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표면적 당사자가 따로 있는 축산품 부정 납품의 사례 역시 이같이 판결했는데, 중앙회가 실제로 납품 주체인 경우까지 그 아래 지역농협(단위농협)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판례와도 배치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