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 기자 기자 2016.06.16 11:03:38
[프라임경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는 영상, 음악, 자막 등 여러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억에는 영화감독과 배우들만 남는 게 대부분이죠. 주목 받는 사람들과 달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처우는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평가된 사람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외국영화를 감상할 때 '자막'만큼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 물론 글로벌 시대에 영어 하나쯤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세계 각국의 영화를 자막 없이 과연 몇 편이나 감상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외화에서 자막의 필요성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판에서의 자막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요소로만 비춰지고 있다. 한 해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100여개에 달하지만, 영화제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은 단기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고용되고 영화제 폐막과 함께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숨은 주역들에게 조명을 비추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인들이 있다. 바로 '21세기자막단'이다.
◆번역부터 영상 적용까지…자막제작의 모든 것
"자막제작 업무를 한 곳에서 끝내는 회사는 없습니다. 일반 자막제작 회사도 번역과 글자를 만들어내는 곳과 이를 영상에 입히는 회사로 나눠져 있죠. 하지만 우리의 업무는 '원스톱'으로 진행됩니다."
21세기자막단 김빈 대표의 말이다.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자막제작 분야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김 대표의 눈빛에서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자막단은 김 대표를 포함해 10명 정도로 구성됐지만, 이들의 연간 사업을 들여다보면 일반 자막제작 기업보다 전문적이다.
자막제작 작품들은 국내에 상영하는 해외 작품과 해외 수출이 필요한 국내 작품들이 그 대상이다. 해외 작품의 경우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정도지만 이 밖에 아랍어, 인도어 등은 영어자막으로 이중번역을 거쳐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이들 손을 거치는 작품들은 연 평균 400~450편에 달한다. 연매출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특별한 용도의 화면 자막이나 영화제처럼 극장 운영이 필요한 행사의 경우, 운영과 컨설팅까지 지원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 궁극적 목표 '메이킹필름영화제'로 실현
21세기자막단의 사회적 목표는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 대표의 이러한 목적의식은 현재 자막사업을 넘어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에도 미치고 있다. 영화를 구성하는 작업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업무에는 자막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민들의 결과물로 21세기자막단은 지난 2014년 자체제작 영화제인 '메이킹필름영화제'를 탄생시켰다. 이 영화제는 작품을 만드는 스태프들을 초대하고, 그들로부터 제작과정과 방법들에 대해 전문적인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다.
"지난해 제2회 메이킹필름영화제에는 영화음악팀을 초청했어요. 이날 무대는 관객들에게 음악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꾸며졌죠."
마치 집착이 심한 전 여친(여자친구)의 '날 버리면 네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라는 회유성 협박처럼 과감한 구성이지만, 이 같은 생략법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력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올해에는 자막 없는 외화로 메이킹필름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는 영화계를 넘어 다양한 조직들과 우리의 미션을 함께 풀어가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세우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시장 저변확대 모색
"사실 예전부터 온라인으로도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하고 있었는데, 회사의 위치적 한계에 부딪쳐 실행되지 않았었죠. 그런데 지난해 12월 이곳, 서울혁신파크로 회사를 옮기면서부터 새로운 사업을 위한 준비들이 활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초창기 21세기자막단은 일반 사무실 건물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주변인의 관심은 받았지만 방문, 협업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서울혁신파크로 자리를 잡으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서울 혁신파크는 서울의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서울시가 민간위탁 방식으로 설치,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곳에는 '사회혁신'이란 공통된 목표를 가진 이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높아지게 된 것 같아요. 또 같은 층에 있는 입주자들은 이유 없는 호기심에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런 방문들이 영화제, 상영회 개최 등 협업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죠."
현재 21세기자막단은 온라인 진출을 위해 회사 홈페이지 리브랜딩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 뷰티나 게임 같은 온라인 영상콘텐츠들이 해외로 많이 수출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자막 없이 나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끝으로 김 대표는 21세기자막단의 기업 목표를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자막단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자막은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자'라는 기업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같은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영화계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일 할 준비는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