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6.13 13:10:35
[프라임경제]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가 그룹 전반을 흔드는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 등이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신동빈 회장의 자택에서 개인 금고가 확보되는 등 비자금 조성 경위 파악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롯데그룹 본사 등 17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진 만큼 자료 분석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형제 간 갈등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자금 이슈 등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롯데는 시계 제로 상태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다시 종업원지주회 흔들기에 나서는 등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가운데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이번 정기주총을 통해 동생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등 현 롯데홀딩스 임원 해임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일 자신이 지분 '50%+1주'를 보유한 광윤사 명의로 긴급성명을 내는 등 종업원지주회 설득에 나선 상태다.
만약 종업원지주회가 그의 편에 설 경우 형제 간 갈등에서 형인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광윤사 지분에 종업원지주회 지분을 더해 과반 이상인 55.9%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되는 것으로, 롯데홀딩스를 통해 일본 롯데그룹을 장악하고 호텔롯데 지분 99%를 손에 넣어 한국 롯데그룹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롯데그룹으로서는 이 같은 집안 싸움에 더해 비자금 수사까지 겹치면서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오랜 시간 베일에 싸여왔던 롯데의 지배 구조와 전략은 지난번 경영권 분쟁으로 일부분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여기 더해 비자금 수사를 통해 재계 5위 규모로 성장하는 동안 M&A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온 롯데의 자금 문제 등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2008~2012년간 26건이나 진행된 M&A 배경과 과정에 대한 전면 검증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정적인 오너십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물론 M&A라는 성장동력 엔진 자체가 꺼질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이유다.
◆옴니채널과 관광 꿸 면세점 전략 '정체 위기'
롯데그룹은 미래 성장의 핵심축을 석유화학과 관광, 옴니채널(Omni Channel)의 세 가지로 잡고 투자를 강화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어느 유통 경로에서든 같은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한 옴니채널 환경을 구축하려면 면세점 사업이 안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호텔롯데 상장이 검찰 수사 이슈로 좌초 상황에 직면하는 등 면세점 사업을 본격화할 방법들이 대부분 막힐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으로 5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하면 호텔과 테마파크 사업은 물론 해외 명품 브랜드 인수 등으로 면세사업에도 큰 힘이 실릴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호텔롯데 상장이 보류된 데 이어 재획득 기회를 노렸던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도 여론 악화로 인해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른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월드타워를 관광 부문의 핵심 동력으로 키우는 데에도 면세점의 뒷받침이 절실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상황 악화는 더욱 뼈저리다. 123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개장하면서 들어올 것으로 기대된 매년 400만명 규모의 해외 관광객이 쓸 자금 효과의 수혜는 롯데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권 재획득에 상당 부분 그 향배가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학 부문, 한화와의 경쟁 구도 본격 조성 '무산 위기'
롯데가 석유화학에 이어 정밀화학 분야에 새롭게 진출하는 등 종합화학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겠다는 계획도 결국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롯데는 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빅딜인 삼성 화학 계열사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부문의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바 있다. 이 중심에 선 회사는 롯데케미칼이 될 것으로 회자된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에 저가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한 에탄크래커 플랜트 건설을 추진하며 해외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M&A를 통해 몸집을 확고부동하게 키우는 전략도 준비하고 있었다.
롯데케미칼은 연간 매출이 4조원대에 이르는 액시올사 인수로 매출 규모를 21조원 이상으로 키워 글로벌 12위 종합화학회사로 발돋움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인해 지난 10일 인수 의향서를 철회하며 사실상 이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신동빈-이재용 간 직접 교섭'이라는 방식으로 삼성그룹 화학계열사 인수가 추진 단추를 뀄던 것을 감안하면 화학 분야에 대한 롯데 측의 애정과 미래 구상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액시올사 인수로 클로르 알카리(CA) 등으로 전선을 확장하면서 한화 측과 화학 부문 자웅을 겨룰 가능성도 있었다. 액시올사는 CA와 함께 폴리염화비닐(PVC), 건축용 내외장재를 생산하는 곳으로 이곳을 품을 경우 한화케미칼과 전면전을 치르게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롯데의 액시올 M&A 시도가 무산되면서 한화의 화학 전략이 상대적으로 조명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한화케미칼은 유니드에 CA 공장을 매각하는 등 공급과잉이라는 우려와 달리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한화케미칼의 이런 행보는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입법 취지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석화 부문에서 일부 품목의 공급과잉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업계 내부에서 자발적인 사업재편이 이뤄졌다는 평을 얻었다.
이처럼 한화-유니드 간 원샷법 활용 사례에도 불구하고 롯데케미칼이 반대로 M&A 전략을 택했던 이유는 CA를 장악하면 PVC와의 연관성은 물론 섬유·금속·제지·세제·식품 등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경쟁사인 한화케미칼의 2분기 행보에 긍정적 효소가 기대되는 상황과 대비된다. NH투자증권 등은 한화케미칼에 대해 최근 2년 동안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화인케미칼을 비롯해 다수의 사업을 인수한 상황, 즉 정상화 과정을 끝내고 이제 실적 증대 기간을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케미칼이 갤러리아 등을 거느리고 있어 결국 면세점 사업의 사령탑격으로 기능하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롯데가 순수하게 화학 분야에 대한 애정과 미래 구상 외에도 전체적 그림에서 한화케미칼과의 대결을 적극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 한화케미칼은 이제 대규모 투자가 일단락되는 등 지출 필요성은 줄고 하반기 시내면세점 실적 개선 등 리테일 사업의 실적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수사 여파는 오너 일가 이미지의 상처 크기보다도 롯데의 삼각편대 미래성장 전략에 두루 불똥이 튀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