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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흙수저 소년 이야기

신화에서 나락으로 구른 '미다스 손'은 누구?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6.13 12: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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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소년은 1960년대 전남 함평의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랐다. 다 같이 못 살던 탓에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부르짖던 그 시절은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일자리가 넘쳤었다.

하지만 소년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에서 멈추고 만다. 배우고자하는 열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흙수저'로 태어난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을 뿐이다.

소년은 청년이 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스무 살 청년은 세상에 대한 불만에 차있었으며 가진 자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가 발붙인 곳은 남대문시장. 하루 50만 인파가 쏟아진다는 그곳에서 친척이 하는 노점의 종업원으로 들어갔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손님이 몰릴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리를 폈다. 시장통에서 벗어나 인천 월미도, 설악산까지 두 발로 안 뛴 곳이 없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았다. 명절에 고향에 가는 대신 서울역에서 귀성객을 상대로 임시 버스표를 팔았다. 그렇게 7년 동안 길거리를 전전하며 1억원을 모았다. 청년의 이름을 건 첫 가게가 생겼고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시커먼 남자가 화장품을, 심지어 이름도 없는 제품이 잘 팔릴 리 없었다. 청년은 동네 화장품 가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직접 호객꾼 노릇을 했다.

손님을 끌어다 주자 자연히 입소문을 탔고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돈이 벌렸고 자신이 붙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사치였다. 그저 성공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쳤고 청년은 이뤘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다. 거래처는 고의 부도를 냈고 청년은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이를 악물었다. 믿을 것은 자신뿐이었다.

다시 7년여가 흘러 중년에 들어선 남자는 서울 명동에 터를 잡았다. 질 좋은 화장품이 가리지 않고 3300원이라니. 세련된 매장 분위기에 놀랍도록 싼 가격은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중저가 화장품업계 1위, 화장품 시장점유율 3위 달성. 저가 브랜드 최초 동화·신라면세점, 타워팰리스 입점. 뉴욕 맨해튼 1호 매장 개점에 연이은 해외진출. 설립 2년 만에 1500억원 매출 기록. 비즈니스위크 영문판 커버스토리 장식 등등.

이는 모두 '더페이스샵'의 이름으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쌓아올린 공든 탑이었다.

'화장품업계 미다스 손' 정운호의 성공스토리는 쓰나미에 휩쓸린 모래성 꼴이 됐다. 지난해 상습도박 혐의를 시작으로 드러난 그의 민낯은 확인된 것만 60억원대 달하는 수임료를 둘러싼 법조게이트로 번졌으며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사면초가에 몰아넣을 정도로 추악했다.

정 대표가 사업상 이권과 면책을 위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의혹의 대부분은 '결핍'과 '성공에 대한 갈급함'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결국 코너에 이른 정 대표가 수십억원을 들여서라도 감옥신세를 면하려 한 배경에 사법부마저 돈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천박한 의도가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덕분에 부지런한 '흙수저'가 독하게 한 우물을 파 최고가 된 영웅담에 멘티가 되길 자처했던 수많은 청년들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마치 '산타는 없다'는 것을 깨닫듯 '100% 아름다운 성공스토리는 없다'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셈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성공담의 내용물은 불법과 청탁, 인권이 무시된 '갑질'로 먹칠돼 있었다. 이제 정운호 대표의 몰락은 개인의 죗값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이는 기성세대가 지금의 청년을 '나약한 N포세대'라며 채찍질할 수 없는 이유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찾는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추악한 꼴을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