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6.06.09 20:27:51
[프라임경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PB(Private Brand) 제품을 둘러싼 관행을 바꾸는 단초가 될 것인지 눈길을 끈다. 가장 많은 살균제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제품을 모방한 PB상품이 나오면서 피해를 키운 가운데, 이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이미 제조물책임법이 도입됐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롯데마트 전 영업본부장과 홈플러스 전 법규관리팀장 등 관계자들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간 사실상 책임은 모두 떠넘기고 싼 가격의 상품을 공급받아 이윤을 추구하던 대형 유통업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부수적으로 기존에 이른바 표시제조업자와 관련 민·형사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것이 한층 발전된 논의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받은 이들은 A 전 롯데마트 영업본부장과 B 전 홈플러스 법규관리팀장 등이다. 한편 홈플러스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불량화장품 회수율 저조 빚은 OEM과 ODM 구분 악용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각각 2004년, 2006년에 가습기 살균제 PB상품인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와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했다. 검찰은 이들 회사가 제품 출시 관련 컨설팅을 받는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의 필요성을 검토하지 않은 채 제품 생산을 결정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출시 전 안전점검의무 부분이 과실치사 혹은 치상 적용이 가장 큰 이유가 됐지만, 이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감시의무를 진다는 논의에도 기초 공통분모가 된다. 때문에 형사소송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이 이 부분을 짚을 수밖에 없어 함께 공방전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사소송에서도 유사 논의가 함께 검토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다.
제조물책임법이 표시제조업자에 대해 규정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즉 제조물에 성명이나 상호, 상표 등을 통해 자신을 제조자로 표시한 자 또는 제조자로 오인하게 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도 제조업자와 동일하게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제2조 제3항).
이에 따라 중간유통자(대형 유통업체)가 자기 이름을 걸고 상표를 붙여 PB 상품을 팔면 표시제조업자에 해당한다고 해석, 제품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제조물책임법을 유통업체가 진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나온다.
하지만 실무에 있어서는 이런 법조문을 비켜가는 상황이 널리 용인됐다. 예를 들어 2009년 임두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입수해 내놓은 식약청과 한국소비자원의 화장품 행정처분 사례 현황에 따르면 기준 미달·불량 화장품의 평균 회수율은 43%에 불과했다.
이는 바로 OEM과 ODM의 차이 때문.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상표부착방식)은 발주처(PB 상품의 경우 대형 유통업체)가 제조법이나 제조방식 일명 '레시피'에 대해 제조업체들을 제약하게 된다.
하지만 제조업체의 자체 설계 노하우나 설계도에 따라 생산한 뒤 자신들은 유통판매에 주력한다면 이는 같은 PB 상품이어도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 제품이 된다.
2009년경 이 불량 화장품 회수 문제가 주목을 받았을 때 에뛰드 등 자체적으로 공장 생산을 하지 않고 공급을 받아 팔기만 한 군소판매업체들이 회수에 직접적으로 열을 올리지 않았던 배경으로 OEM과 ODM 논의가 꼽힌다.
ODM은 제조물책임법상으로도 회수 책임 등이 오롯하게 제조사에게 지워진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대로 통용됐다.
그러나 이는 독일 연방대법원이 이른바 가죽분무기 사건에서 업체의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회수 책임을 진다고 강한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판단을 내놓은 것(1990년)에서 한참 동떨어진 주장이다.
한국에서도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서울대 교수 역임) 등 일부 학자들은 제조물책임법이 표시제조업자에 대해 원래 의미의 제조자에 준하는 주의 의무를 부과하는 취지로 규정을 해석하자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권 전 교수는 제조물책임법 저서에서 OEM과 ODM, PB 등의 방식으로 제품이 제조, 유통된 경우 신뢰를 형성케 한 점에 대해 표현책임의 원칙에 따라 제조물책임을 부담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사상 OEM과 ODM, PB 등 현실적으로 구분이 명확치 않은(사실상 유통업체가 영세한 제조사를 현실적 지휘관리감독하는 간섭현상이 일반적이므로 미세한 구분에 매달리는 일은 언어유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상황에서 표시제조업자(유통업체)에게 표현책임의 원칙을 지움으로써 해결하자는 주장은 유명상표(유통업체 브랜드) 하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소비자가 느끼는 의존관계를 인정, 바탕에 깐 것이다.
아울러 이런 소비자가 실제 제조사를 믿은 게 아니라 유명상표에 기대 신뢰의존관계를 형성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조물로 인한 피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확장하는 쪽으로도 연결된다.
◆PB 유통업체에 대한 소비자 '의존관계' 주목
검찰에서는 이번에 롯데마트 등 PB 상품을 발주한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용마산업 등 좁은 의미의 제조자 못지 않은 형사 책임을 진다고 판단, 영장을 청구했다.
흡입 시 위험성을 제품 출시 전 사전 컨설팅에서 거르지 못한 점을 문제로 삼은 것. 이는 일선에서 지난 번 불량 화장품 회수율 저조 사안에서 보듯 OEM과 ODM의 구분을 짓고, ODM의 경우 책임 소재를 모두 제조업체에게 넘기던 것을 검찰이 깬 것이다.
OEM과 ODM간 언어유희에 가까운 구분 시도가 이처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면서 형사 책임에서도 위의 제조물책임법 입법정신에 기한 '표현책임'의 원칙과 맥락을 같이 하는 제조물 '계속책임'을 검찰이 염두에 둔 것인지 주목된다.
김호기 서울시립대 교수는 특히 올 상반기 내놓은 '개발위험의 항변과 형법적 제조물책임' 논문에서 "일반 사회구성원에게 널리 알려진 유통업자가 제조를 의뢰해 자체 상표로 판매하는 PB 상품의 경우에는 제품의 판매 및 회수 등에 대해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등에 상응해 유통업자에게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형법적 제조물계속감시의무를 부담시키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PB 상품을 파는 것은 OEM과 ODM 등의 구분에 차이가 없이 자신의 사회적 브랜드 가치에 기대 파는 것이므로 위험성 없는 상품을 파는 것인지 사전적으로나 사후적으로도 안전감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신물질을 사용한 PB 상품이나 나중에 발견되는 결함 등에 대해 유통업체가 어느 정도까지의 관리감독책임 특히 무과실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교통정리는 이번 롯데마트 등 관계자 처벌로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제조물책임법을 만들어 놓고도 지엽말단적인 OEM-ODM 논의로 판매 기업들이 빠져나갔던 문제 상황에 대한 지적이 많았던 점이 이번에 일반 상식에 한층 가까운 법해석으로 한걸음 이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