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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맞춤형 보육? "필요 없어. 돌아가"

정부 예산 아끼려 어린 자식 떼놓는 '매정한 부모' 만드나

이수영 기자 기자  2016.06.01 13: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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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요즘 말로 '혼돈의 카오스'다. 맞춤형 보육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엄마들 분위기 말이다.

7월부터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은 오전 9시~오후 3시(6시간)까지로 제한된다. 같은 6시간이라도 이 시간 외에는 별도 지급된 긴급보육바우처(1시간 단위·매월 15시간)를 써야 한다. '칼 퇴근'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이보다 날카로울 수 있나 싶다.

◆'자기기술서' 엄마 반성문 요구하는 정부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지난주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구분, 각 가정에 통보했고 호소네는 종일형(12시간) 수급자 판정을 받았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어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대상 긴급 총회가 열렸다.

아침에 첫째를 교실에 데려다주고 지하 강당에 내려가니 10여명의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엄마들은 각자 걱정거리를 쏟아냈다.

4대보험 가입 여부로 한 번에 워킹맘 '인증'을 받은 내 경우는 다행이었다. 유독 아르바이트나 가족끼리 자영업을 하는 엄마들이 많은 이곳에서 그들은 가차 없이 '전업주부'로 몰렸다.

"저도 그렇고 여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난감해요.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 똑같은데. 규정 맞춰 일일이 서류 떼 주는 사장들이 얼마나 있을지…."

"재직증명서 같은 걸 못 떼면 '자기기술서' 쓰면 된다는데 동사무소(주민센터)에 물어보니 웬만하면 서류 만들어 오래요. 일일이 읽고 확인하기 귀찮다는 거겠죠."

"애들이 걱정이에요. 일찍 집에 가는 친구들 보면 분명히 영향을 받을 텐데. 지금도 원에서 제일 늦게 집에 가거든요. 애가 불쌍해서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럴 수 있나요."

"그 '자기기술서'라는 것 말이에요. 꼭 엄마들이 애들 좀 봐달라고 나라에 '반성문' 쓰는 것 같아요. 아니 우리가 처음부터 어린이집 보내 달라 매달린 것도 아니고."

총회는 시작도 안 했는데 불만과 회의감이 가득했다. 한 달 전 맞춤형 보육의 허점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풀었던 때보다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또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맞춤형 보육의 구멍은 비단 생계형 워킹맘에 대한 홀대뿐만은 아니라는 게 여실해졌다.

◆맞춤형 보육은 '예산 맞춤형' 보육

먼저 연초에 정한 교육 프로그램 일정이 완전히 꼬여버린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호소남매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10시부터 일과를 시작해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특별활동 수업을 받는다. 음악과 미술, 체육수업을 요일별로 진행하는데 정부지원금 외에 매달 11만원이 부모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맞춤형 보육이 시작되면 종일반이 아닌 아이들은 특별활동 수업을 받을 수 없다. 외부 강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수정하기도 어렵고 만 0~2세 아이를 키워보면 오전보다 낮잠 이후 집중력이 더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무엇보다 맞춤반 아이가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매일 1시간씩 긴급보육바우처를 써야 하는데 등원일수(평균 20일)로 계산하면 결국 5시간의 공백이 생겨버린다. 그럼 이 추가 보육비는 누가 부담할까?

쉽게 생각하면 부모가 내야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답이 없다'가 정답이다. 복지부는 이런 세세한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소네가 사는 인천시의 경우 2014년 시간제 보육을 시작해 지난해 맞춤형 보육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어린이집연합회 등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상당한 부작용과 불만사항이 접수됐고 시범사업 대상 어린이집 중 일부는 중도 포기를 선언할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올해 전면 시행을 강행했다.

사실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얼마나 줄어드는 지 관심 밖이다. 그럼에도 맞춤형 보육이 '예산 맞춤형' 보육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은 기정사실화 된지 오래다.

우리가 정부에 대해 한심하다며 혀를 차는 이유는 육아 현실을 눈곱만큼도 알지 못하는 그들이 구멍 난 예산을 아끼기 위해 쏟아놓은 말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편 가르고 고용의 계급화를 자극하는 식의 치사한 방법을 곁들인 것도 문제다.

이쯤해서 솔직해져야 한다. 무상보육은 실패했으며 혼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멀쩡한 부모를 어린 자식 어린이집에 떼놓고 나도는 매정한 양육자로 '돌려 까는'식의 정책을 쏟아 놓고 수혜자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사족이지만 이날 만난 엄마들이 가장 크게 동의한 말이 있다.

"(우리를 알아주는 쪽으로)투표를 제대로,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