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건 수사가 계속되면서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 측의 유해성 내용 인지 여부에도 칼끝을 겨눌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살인 논란으로 맞추는 논의가 대두된다.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이를 방조한 고의성이 충분해 보인다는 것으로, 영국 본사도 이에 방조, 개입했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영국 본사의 개입 문제를 이 같은 살인 논란 공세로만 푸는 것은 비약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업무상 과실치사 경감 등 '디테일한' 적용 내용 여부는 우선 논외로 하더라도, 살인과 방조 논란이 자칫 선정적 논쟁으로만 흐를 수 있다는 것.
아울러 현재 일련의 상황을 볼 때 오히려 사기 행보에 이어지는 불가분적 사후 처리에 영국 본사마저 가담했다는 논리 구성을 더 중요하게 볼 필요 또한 제기된다.
◆사용자책임론 "정당한 인출엔 예금주 절대 손해 안 봐" 판례 낳아
특경가법상 사기의 활용에 주목하는 근거는 민사법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사용자책임으로 논의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본사가 살인 방조는 물론 사기에 가담한다고 볼 때의 유용성은 대략 이렇다. 이미 구속된 신현우 전 대표 등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판매해 피해를 발생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신체적 피해 외에도 이를 이익의 추구, 즉 사기로 봤으며 부당이익액이 클 것을 들어 특경가법상 사기로 가중처벌할 수 있다는 논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경가법상 사기가 인정될 경우의 형사적 벌칙 범위(형량)도 확실히 뛰어오르겠지만, 현재 피해자 측이 진행해야 할 민사소송에서도 그 논리적 정확성을 강화하기에 큰 의미가 발생한다. 이른바 사용자책임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유사한 구조를 보이는 정보사 땅 사기사건 배상책임 논쟁이 떠오른다. 이 사건은 3년 10개월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1996년 마무리됐다.
제일생명은 정보사 부지 매입 대금으로 국민은행 모 지점에 입금시켰다가 사기단에 거액을 사취당했다.
검찰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배상 책임의 소재도 드러나는 한편, 민사소송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국민은행 측은 제일생명 간부(Y 상무)의 인감이 날인된 백지 예금청구서 30장을 받아뒀다가 예금을 인출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 (사기단의 일원인) J씨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인출해주라는 말을 제일생명 측으로부터 들었다는 J 국민은행 직원(대리)의 진술을 이유로 "은행은 돈을 맡았다가 예금주의 요구에 따라 지불해준 것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제일생명은 J 대리가 J씨 등 사기단과 부정인출(자금 빼돌리기에 관여)했기 때문에 국민은행 측이 은행 직원인 J 대리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지고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공방전 끝에 제일생명은 은행 직원의 가담 책임을 은행 측에 넘김으로써, 손실 피해를 최소화하게 됐다. 이는 정상적으로 한 예금계약이라면 은행 직원의 불법인출 때 고객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선언한 중요 판례다.
◆사용자책임론 적용 위한 상징적 처벌 범위 확장 주목
사안의 구조가 이렇다 보니 검찰이 적극적 수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논란 대신 미국인 전 사장이나 영국 본사의 책임 문제까지 논의 확장을 이어가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소환 조사나 구속 등 여러 가능성을 따져볼 때 진행의 난해함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처벌이 갖는 공익적 의의가 크기 때문에 짊어지고 나갈 필요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풀이를 낳고 있다.
손해액이 큰 사안에서 민사와 형사 간 판결 불균형으로 이어질 경우 결국 사회적으로 사법 불신이나 정부의 관리 책임 등에 대한 불만 여론 비등이 불가피하다. 다만,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의 논리 전개와 방향 설정은 민사소송의 전개에 오히려 시사점과 영감을 줄 수도 있는 요소로 기대를 모으기도 한다.
이번 검찰의 수사 방향에 영국 본사에 대한 공략 논의가 계속 거론되는 상황은 과거 제일생명이 거액의 사기로 200억원을 상회하는 피해에 노출됐다 이를 면할 동아줄을 만나는 등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좌우할 단초가 수사 향배에서 비롯했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겹쳐 보면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