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6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SDJ코퍼레이션 측에서 기자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 입원 사실을 알렸다. 그 의도는 명확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 열심히 사진 찍고 기사를 써달라는 것. 많은 기자들이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의무 아래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니다 다를까,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를 태운 휠체어를 끌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기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90세가 넘은 고령의 신 총괄회장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겉모습만 보고 정신건강이 어떤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법원에서 했던 주장처럼 '50대'같이 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임신한 여기자를 지팡이로 미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변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했다. 만약 내 아버지가 치매인지 아닌지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는 상황인데 동네방내 사람들에게 알려 그 장면을 지켜 보게 할까? 걷기도 힘든 고령의 아버지를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싶을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에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 맨손으로 껌 사업을 일으켰고, 한국의 5대 그룹으로 성장시킨 신 총괄회장. 특유의 카리스마와 꼼꼼함, 대범함으로 롯데를 키운 우리 근현대사에 살아있는 신화임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추구한다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 신 총괄회장의 평소 신념이었고, 때문에 언론 앞에 나서길 극도로 꺼려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년간 수도 없이 언론에 나오고 있다. 정정했던 때의 카리스마 강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채로. 말년을 편하게 보내야 할 나이에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사실 후계구도를 분명히 해놓지 않은 그의 실책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은 너무 과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 한 개인의 존엄성이 침해받고 있다.
하지만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궁지에 몰릴수록 '아버지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신 총괄회장과 함께 여론의 중심에 서려고 할 것이다. 이미 두 번의 주총에서 모두 패배한 그에게 남은 카드라곤 아버지밖에 없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칩거하던 신 전 부회장이 병원에 가기 싫다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최근 한국으로 날아오기까지 했겠는가. 신 전 부회장 형편에서 다음 달로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까지 이 카드를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결국 우려하던 일까지 터져 버렸다. 신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받다가 도중에 퇴원해 버린 것이다. 신 총괄회장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장남은 이야기한다. 진짜 본인의 의사인지, 장남의 계획에 의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때 냉철한 승부사로 불린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이제는 신 총괄회장을 놓아줄 때다. 그는 상법상 정당한 절차를 거쳐 그룹의 주요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기업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는 상법 절차에 따라 그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임직원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다.
아버지이자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신 총괄회장에게 신 전 부회장이 더 이상 그 선을 넘지 않길 기대한다.